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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단편

[아라시팬픽/쇼쥰] 첫사랑

SPICA*쥰 2016. 5. 28. 22:46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수 십명의 남자 아이들이 한 공간에 들어차 춤추고 웃고 구르며 시끄러웠던 공간. 백턴을 할 수 없는 주니어로 분류되어 연습실 한 쪽에 나란히 앉아서도 그 당시의 녀석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실실거리던 웃음 소리. 이렇게 된 거, 다른 애들은 백턴하는 동안 나는 쇼군이랑 같이 춤추면 되겠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

 등 뒤에 딱 붙어 서서 내 어깨를 넘어다 보던 얼굴의 가까움. 장난치는 게 분명한 숨결. 마치 이제는 자기가 더 크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종종 그랬었다. 어느 여름 이후 키만 훌쩍 자라버렸던 녀석은. 

 고작 2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학창 시절의 2년 차는 꽤 큰 것이어서, 큰 형인마냥 행동했던 내가 있었다. 수많은 동생들 중에서도 유독 작기도 했고 자주 어울렸던 탓이라고, 나를 워낙 많이 따랐던 지라 특별히 마음이 쓰였던 거라 생각했다.


 사실 아예 모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부딪혀 올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쥰의 태도가, 눈빛이 나에게만은 조금은 다르다는 걸 모를 수 없었을 테다. 어쩌면 조금 더 부드러운 말로, 조금 더 상냥한 태도로 거절했어야 했다. 미안, 하고 끊어지는 관계가 아니니까. 앞으로도 수년, 수십년을 함께 하게 될 사이니까. 그래서 거절해야 했고, 그 거절로 상처주지는 않았어야 했다. 매우 뒤늦게서야 깨달았지만.

 콘서트 안무 연습이 끝난 후, 삐죽삐죽한 머리에 여드름 난 얼굴로, 몇번이고 오른손을 트레이닝 바지에 문지르며 단어를 고르던 모습. 떨리는 양 입술을 물고선 결국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마른 어깨. 성큼성큼 연습실 문으로 걸어갔지만, 문고리에 손이 미끌려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던 뒷모습은 내 기억인지 아니면 상상인지 확신할 수 없다.

 연습실에서의 이야기 이후로, 한 번에 모든 게 멈춰버리진 않았다고 기억한다. 갈수록 바빠지는 스케쥴에 비례하여 커지던 불안한 마음, 함께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 욕심. 모두가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하면서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예민한 마음을 감추지 않기 시작한 쥰은 행동으로, 말로 툭툭거리긴 했지만서도 여전히 눈가에는 수줍은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생각은 그 후로도 한참 후까지도 하지 못했다.


 “3년 간 좋아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게 첫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그리웠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생각의 끝이 가서 닿는 곳에 어떤 감정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두려워 그냥 덮어놓았다. 

 고맙다고 생각하자 했었다. 누군가의 첫사랑이 된다는 것, 그 간질간질한 감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낯설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테지만. 쥰은 나에게도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가끔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던 중에 필요 이상으로 조금 오래 머무르는 시선을 느꼈을 때.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하면 이내 빗겨가버리는 그 시선을 좇을 때. 

 녹음실에서 스칠 때 스케쥴 바쁘지 않냐며, 일상에 대해서 물어보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볼 때. 

 대기실에서 리다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볼 때, 콘서트 중에 니노에게 편하게 어깨동무를 할 때, 마사키에게만 털어놓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어쩌다 알게 되었을 때. 

 같은 그룹으로 10여년 같이 활동하는 멤버로서,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가 제안했던 그 선을 절대 넘어오지 않으려 오히려 한발 물러나 배려하는 쥰의 모습을 보며, 가끔은 그 때의 쥰이 얼마만큼 진지했던 감정을 가졌던 것인지 미처 묻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 솔직하게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주할 자신은 없지만, 궁금해지곤 한다. 


 그리고 정말 가끔은, 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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