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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 하와이

SPICA*쥰 2016. 8. 29. 00:20

 나의 친구, 마츠모토 쥰은 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느 꿈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밤이 되면 혹은 일정 시간의 생활을 한 후에 인간은 생체 리듬적으로 꼭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이 시간 동안에 뇌가 계속 활동을 하면서 남긴 잔상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미래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라든가 자신에게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따라서 문맥 상에서 흐름을 보고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었는지를 파악해야함이 맞겠다. 다른 언어에서도 ‘꿈’이라는 단어에 이 두 가지의 의미가 같이 존재하는 것인가 궁금해진 적이 있었지만은, 그에 대해서 굳이 조사해보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의 지식은 저 세 언어에서 그친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아무튼 이 전의 문장에서의 ‘꿈’은 두 의미를 모두 가리킨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마츠모토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 역시도 굳이 나눠보자면 말 없이 있는 시간보다는 말을 하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편인 사람이며, 마츠모토와 관심 분야도 비슷한 편이라 둘이 대기실에 있을 때면 얼마 전 신문에 실렸던 런던 시내의 한 스포츠 경기장에서 일어난 난동 사건부터 어느 편의점 음료수의 할인정보까지 끊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는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안그래도 데뷔 이후 이미 일정하지 못한 나의 수면 시간이 매우 높은 확률로 방해받고 있는 요즘의 나날이다. 늦은 저녁도 아닌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에 마츠모토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대부분의 이야기는 굳이 전화를 걸어서 나에게만 이야기해줘야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굳이 이 늦은 밤에 급하게 전해야 하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며, 오늘 맛있는 빵을 먹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는 굳이 내가 알지 않아도 되는 시덥지 않은 정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런 말을 직접 내뱉지 않을 만큼은 앞으로 수년간 함께 할 같은 그룹 멤버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는 나, 사쿠라이 쇼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새벽 3시에 마츠모토 쥰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의 매뉴얼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그것은 내 몸집만한 커다란 베개를 양 팔과 양 다리로 껴안은 채 옆으로 누워서 휴대폰은 오른쪽 얼굴 위에 올려 놓은 채로 눈을 감고서는 마츠모토의 목소리의 리듬을 느끼는 것이다. 짧지도 않고, 한번 시작하면은 최소 3,40분은 이어지는 마츠모토와의 통화가 이미 수십통째라─열일곱번째 이후부터는 더 이상 세는 것을 포기해버렸다─일정 갯수의 마디마다 말 끝을 늘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의 어리광 섞인 말투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몇 마디마다 말투의 톤을 느끼며 ‘그렇구나’ ‘응’ ‘그래서?’ 같은 말로 대답해주면서 마츠모토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이어나가게끔 하는 경지에 이르고 만 것인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으나 수면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 두 사람의 이해 관계의 밸런스가 매우 적절하게 맞춰진 형태라고 나 스스로도 감탄하곤 하였으나─물론 상대인 마츠모토는 이에 대해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알아서는 안될 것이었는데─지금처럼 자신만만하다가 허를 찔리게 되리라는 것쯤은 예상했음에도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준비해놓지 않은 나를 탓할 뿐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그 울망울망한 눈에 눈물이 맺히지 않게 하며 이 함정에서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는 것인데, 그러니까 지금 그의 질문이 뭐였냐면-


 “그래서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대해 나에게 말해주려고 전화한 거 아냐? 그걸 왜 나한테 퀴즈로 내는건데! 하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흐름을 파악하건대 이미 마츠모토는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한창이나 하고 있었고─통화시간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벌써 16분째 하고 있었을 테다─“쇼군,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계속 얘기해”의 흐름도 이미 한번은 지나갔던 참이다. 이대로 잠들어버린 척을 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대로 아까 전화 받자마자 지금 새벽 3 25분이라고 알려준 이후로는 제대로 들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하는 것인지 갈등하며 쌍꺼풀을 짙게 만들며 눈 앞의 벽지만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마츠모토 사마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내가 나의 넘버원 팬의 꿈 일기장이 되어주고 그 삐뚤빼뚤한 치열을 귀여워해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단 말인가요.

 “알았어. 이만 끊을게” 하고 통화가 끊겨버린 신호. 그동안 바라고 또 바랐던 신호였지만 지금 이 상황, 마츠모토가 듣지도 않는 사람을 상대로 혼자서만 계속 떠들었다는 것을 눈치채게 만들어버린 상황에서는 최악의 전환이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안무 연습실에서 만나야 하기에, 조금 전에 결정하지 못한 문제는 아침까지는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늦은 밤이라 피곤해서 그만 잠들어버렸다는 변명이 그나마 화를 덜 내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 거지? 갑자기 화가 난다. 내가 왜? 애초에 새벽 세시에 멤버에게 전화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 아냐?


 그 날 아침, 안무실 건물 입구에서 만난 마츠모토는 그 전날 밤의 통화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감정을 숨기려고 하는 행동까지 서투르게 다 티가 나버리는 녀석이 전혀 아무런 티도 내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의아해서, 계속 신경쓰일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간주에 들어가는 발동작 안무는 처음 해보는 패턴이었고 포메이션도 꽤 복잡한 편이어서 니노미야와 아이바 역시 계속해서 헷갈려 할 정도였지만, 나는 리듬이 쉽게 익혀지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나는 것마냥 성질을 부리며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휴식 시간을 갖자고 했다.

 오노와 함께 음료수 자판기로 향하던 마츠모토를 따로 불러냈고, 자신을 바보 취급해버린 그 일방적인 통화가 없었다는 듯이, 그런 것 따위에 상처 받은 적 없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마츠모토에게 내가 왜 심통이 났는지는 지금 되짚어 생각해봐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에는 마츠모토가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귀찮게 해서 미안하고,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그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분명 내가 바란 것은 그런 결말이 아니었는데 괜한 심통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먼저 연습실로 돌아갔다. 나도 막내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거, 내가 해야할 몫보다도 훨씬 많이,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후로는 마츠모토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고, 처음 며칠은 드디어 밤에 뒤척이지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 싶어 기뻐했다. 그것도 잠시, 침대에 대자로 누워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아직 잘 시간이 아닐텐데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그러다 이내, 내가 왜? 를 외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내가 마츠모토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다음 싱글 데모 테이프 빌려줄 수 있냐, 내 엠디 플레이어가 안 보이는데 혹시 못봤냐─였고, 한밤 중에 자다가 깨서는 콘서트 중에 마츠모토가 토롯코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그걸 보고만 있었던 내 발 밑이 땅 밑으로 푹 꺼지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면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서는 번호를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다시 잠들어버렸고, 다음날 오후 방송국 대기실에서 여전히 웬만해서는 내 쪽으로 시선을 두려하지 않는 마츠모토를 보면서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 한 몇주 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새벽에 내가 듣지 못했던 마츠모토의 꿈 이야기는 뜬금 없이 오노와 둘이서 규동을 먹던 중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리더만큼 엉뚱한 사람이 없는데, 리더는 다른 멤버들을 각기의 방식으로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츠모토가 꿨다는 꿈 이야기 들었냐는 질문에 대체 어떤 꿈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고 싶었다. 머리를 감는데 계속 보라색 물이 빠져서 계속 울었더니 눈동자 색까지 보라색으로 바뀌어버렸다는 꿈? 아니면 복싱 선수로 전향해서 진짜진짜 열심히 준비해서 올림픽에 나갔거든, 근데 쇼군이 심판이었는데 자꾸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거야, 진짜 말도 안된다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하며 잠에서 채 깨지도 않은 나를 추궁하려던 그 꿈? 그리고 어쩌면 나는 마츠모토의 휘황찬란한 꿈에 대해서 나만이 알고 있다는 요상한 자부심, 혹은 비뚤어진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머릿속을 스쳤다.

 “하와이에서 콘서트를 했대, 우리가.

 “콘서트?

 “응, 콘서트. 와이키키 해변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무대를 깔고, 콘서트 했대.

 나는 식탁 위를 휘적휘적 저으며 그림을 그리는듯 움직이다 멈추어선 오노의 젓가락 끝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데뷔를 했다지만, 아직 싱글 몇장 뿐에 앨범은 한장 밖에 내지 않은 지금의 우리가 꿈꾸기에는 너무나도 ‘꿈 같은’ 그런 이야기. 엉뚱하지만, 귀엽잖아. 응 그러게. 마츠쥰, 꿈도 크고 욕심도 많고. 응 그러게.

 내가 수업 받으러 간 사이에 다른 멤버들 셋과 함께 밥 먹던 중에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아이바의 반응은 ‘완전 좋은데! 헬기도 띄우면 짱이겠다!’였고 니노의 반응은 ‘그 전에 도쿄돔부터 가야하지 않겠냐’였다지만, 다들 조금은 신나했다고 전하는 오노의 말투도 다소 들뜬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나의 심정을 표현할 단어를 계속해서 찾아보았는데, 말 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비해 표현에 서투른 내가 겨우 찾아낸 것은-

 뭐랄까. 질투?

 아라시라는 이름의 우리 다섯명의 이야기이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공유하는 게 당연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함에도, 그리고 애초에 마츠모토가 제일 처음 이야기 해주었지만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은 나였음은 머리로는 이해해도 질투라는 감정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때의 하와이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나 혼자인 듯한 기분이다. 일주일 간의 하와이 일정이 다 끝나가고, 하와이에서 콘서트를 갖게 된 소감을 묻는 인터뷰를 이미 수 차례나 가졌지만 어느 멤버도, 당사자인 마츠모토도 그 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니노미야는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지만, 이렇게 놀려먹기 좋은 기회를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면 정말 나 혼자만 기억하거나, 혹은 나처럼 다들 본인이 언급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와인 한 병은 족히 마신 쥰은 내 침대 옆자리에서 세상 모른 채 자고 있다.

 질투라는 감정의 근원을 찾지 못한 혹은 인정하지 못한 나와 그런 나를 마주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바보─쥰이지만, 쥰이라는 것을 쥰이 알면 안된다─는 몇년의 엇갈림과 방황과 다툼을 겪고, 결국 나는 다시 마츠모토의 꿈 일기장이라는 포지션을 되찾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꿈 이야기 메일은 도쿄에서 가진 하와이 콘서트 드라이 리허설 마지막 날이었는데, 쥰이 하와이에서 가장 커다란 하와이안 피자를 먹었는데 내가 파인애플만 골라서 다 먹어치웠다고 하는, 멍청하고도 너무도 그럴싸한 내용이었다.

 결국 마츠모토의 꿈대로 다시 오게 된 하와이, 데뷔 15주년 기념 하와이 콘서트. 난 오늘도 나의 소중한 마츠모토 쥰이 재미난 꿈을 꾸었다며 들려줄 꿈, 혹은 더 멋진 우리의 모습을 꿈꾸게 되었다며 들려줄 그 꿈, 어떤 의미로든 그의 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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