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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단편

[아라시팬픽/쇼쥰] 둘이서 있으면

SPICA*쥰 2018. 12. 31. 01:30

마츠모토의 상냥한 얼굴 대신, 고소한 기름 냄새와 작게 울리는 환풍기 소리만이 사쿠라이를 반겼다. 현관에서부터 자연스레 침샘이 돋구어졌다. 이미 밤 늦은 시각, 한참 전에 저녁 식사까지 마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면 먹지 않을 수가 없지. 외투를 벗어내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서 몰고 들어온 찬 기운은 금방 사그라들게 만드는 따뜻한 실내 덕분에, 넓게 벌어진 어깨와 흉곽의 라인을 잘 드러내는 남색 티셔츠를 입은 마츠모토의 뒷모습을 부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좋은 저녁.”

“응. 수고했어, 쇼군.”

“야식?”


응, 안주, 라고 말하는 마츠모토의 어깨 너머로 프라이팬 위 맥주를 부르는 비주얼을 바라보며, 사쿠라이는 입맛을 다셨다. 몸을 관리하는 기간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사치스러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저를 자꾸 방해하시면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일 셈이었지만, 역시나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씻고 올까?”

“다 됐어. 먹고 씻어.”


프라이팬 위 소시지를 두어번 뒤집으면서, 마츠모토는 왼손으로 쥐고 있던 폰 화면 잠금을 풀고 누군가와의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킁킁, 육즙의 냄새는 물론이고, 마츠모토의 목덜미에 옅게 남아있는 샤워 코롱의 향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것도 그 그래스페드(grass-fed) 그런 건가? 함부르크에서 마지막날 저녁에 먹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이름이 뭐랬드라.

어깨 위 티셔츠로 가려지지 않은 맨살 위에 이제 제법 까칠하게 수염이 올라온 아랫턱을 올리고서는 중얼거리는 사쿠라이의 말에, 마츠모토는 앗, 간지러워 하며 어깨를 약간 흠칫하면서 몸만 살짝 빼낼 뿐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왼손 엄지를 바쁘게 움직이며 메시지에 답장하는 것에 초 집중 상태. 초저녁까지 오늘 하루 종일 콘서트 연습실에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왜 나 안 반겨주는데, 하는 괜한 심술이 날랑 말랑.

옆구리를 한번 살짝 찔러보고서는 식탁 위를 둘러보면, 이미 간단한 식기구 세팅도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맥주? 와인? 아냐, 혼잣말이야 전혀 신경쓰지마. 혼자만의 생각─보다는 다른 누군가와의 대화─에 빠져 있는 마츠모토 들으랍시고 명랑하게 혼잣말을 크게 떠들어보지만, 이렇게 반응이 늦거나 없는 것은 사실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쿠라이는 시무룩해지지 않은 채 냉큼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마츠모토의 손글씨 메모가 붙은 반찬통이나 못 보던 재료들이 이것저것 잡다하게 가득하게 들어찬 냉장고 속을 들여다보며 잠깐 고민하다 캔맥주를 두 개 꺼내 들었다. 역시 바바리안 스타일이지.



일본에도 있기야 하지만,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그렇게나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겨울마다 했었다. 바쁜 연말마다 둘이 마주하게 되는 그 짧은 시간들이 아까워서, 지방 투어 호텔 서로의 방에 숨어 들어 여행 채널을 보면서. 어디선가 캐롤을 듣게 되면, 벌써 다시 봐야할 시즌이 왔다며 그 옛날 둘이서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던 크리스마스 영화들을 스트리밍 하면서. 

따뜻하게 데운 뱅쇼 한잔씩 손에 쥐고, 일년에 딱 두달 정도만 상자에서 꺼내놓을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골라 담거나. 말은 잘 안 통하겠지만 그래도 현지 사람들이랑 같이 노천 테이블에 앉아서 먹으면 재밌지 않을까. 참, 쾰른에서 먹었던 굴라쉬도 맛있었어. 아니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뉴욕의 타임스퀘어라든가. 언젠가는 그런 거 해보고 싶어.

다소 들뜬 듯한 마츠모토의 말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내치기엔 사쿠라이 본인 역시 그런 것들을 직접 목격하고, 새로운 장면들, 새로운 추억들 만드는 것에 욕심이 많은 지라. 물론 고정된 연말 스케쥴들을 뿌리칠 수 없는 아직까지는 전혀 생각지 않는 미래. 

어쨌든 서로 일정을 맞출 수 있는지는 첫 번째 문제도 아니긴 했다. 결국 따로따로 번갈아 독일을 다녀오게 되면서, 오노군과는 벌써 몇 번이나 둘이 해외 여행을 다녀왔지 않냐며 사쿠라이가 장난스럽게 건넨 항의에는 되려 마츠모토가 서운해보이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그러게 우리는 같이 가기 어려운데, 하며 풀죽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사쿠라이는 이내 추울테니까 간만에 팔짱도 껴볼까? 핫팩 넣어둔 외투 주머니에 마츠쥰 손도 같이 넣어서 딱 붙어서 돌아다닐까 같은 달콤한 말들을 꺼내 속삭이며 달래주곤 했다.

이제는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거나 불안해하는 단계는 지나왔으니까. 오랜 연인은 애정 못지않게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을 멤버 뿐만이 아닌 연인으로 거듭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억마다 느낄 수 있다. 잠깐만, 그래도 내가 왔는데 이렇게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건 조금은 서운해해도 되지 않아?

사쿠라이는 식탁에 맥주를 올려놓고선, 짝다리를 짚고 선 채로 소시지를 접시에 담는 마츠모토의 등 뒤로 발소리를 죽여 다가섰다. 아무리 그래도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 단 둘이 있을 뿐인데도, 때때로 마츠모토는 이상하리만치 둔한 면을 보일 때가 있는데.


“아앗, 쇼군! 놀랬잖아!!”


미안하지만, 싫어하는 것은 아는데도 네가 이렇게 귀여운 걸 어떡해. 접시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마츠모토를 품안에 가둔 자세 그대로 오른쪽 귓가에 바람을 한번 불어넣어보면, 양 팔이 붙들린 채 버둥대던 것은 어디 가고 그새 가르릉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마저도 귀여울 뿐이었다.


“우리 크리스마스에 뭐할까?”

“콘서트.”

“말고, 우리 말야.”


너랑 나, 우리 둘이. 사쿠라이가 여전히 마츠모토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폰을 손아귀에서 빼내서는 싱크 위에 올려놓으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마츠모토는 고개를 돌려 그제서야 오늘 저녁 집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눈을 마주쳐오며,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선 눈동자를 한번 크게 굴렸다. 


”쇼군은 뭐 하고 싶은데? 그리고 일단, 이것 좀 놔봐.”


나 배고프단 말야. 이번에야 말로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마츠모토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내면, 접시를 식탁에 옮겨 내려놓은 마츠모토가 의자를 빼 앉으려다 말고 사쿠라이에게 다가왔다. 삐죽이는 표정이 통했는지, 과장해서 한숨 한번 포옥 내쉬고서는 품 한가득 안아왔다. 


“사쿠라이군, 갈수록 애교만 느는 것 같아요.”


애교는 원래 많았거든. 그보다도 마츠모토군이 내 애교에 약해지는 거 아닐까요.



성인 두 사람, 그것도 하루 종일 땀 엄청 흘리며 몸을 움직여온 남자 둘이 먹기에는 정말 입맛만 다실 뿐의 양이어서, 맥주캔을 건배하기가 무섭게 뱃속으로 사라졌다. 어차피 많이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도, 맥주마저 금방 비워낸 것이 못내 아쉬워진 사쿠라이는 식탁 아래로 마주 앉은 마츠모토의 양 발을 살짝씩 눌러대며 피아노 페달 밟는 시늉을 했다. 나 진짜 피아노 어쩌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콘서트 준비에서도 사쿠라이의 마음 한 구석을 계속 짓눌러오는 것은 피아노 독주. 다른 무대들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오래 열심히 준비해왔음에도 스스로가 만족한다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쇼군 시간은 있고?”

“나야 뭐, 마츠모토군 약속 없으시다면야 어떻게든 빼봐야죠?”


어차피 콘서트 일정 중에는 홍백가합전 사회 리허설도 없고. 대본은 조금 더 보기는 해야하지만 하루 정도야. 자꾸만 마츠모토와 함께 있으면, 하루쯤, 이것쯤은 하고 변명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하지만. 그렇지만 정말로 그만큼의 휴식 정도는 괜찮으니까. 미리 계획만 세운다면.


“근데 마지막날이라 뒤풀이 해야하지 않을까.. 제로 끝나고 와. 기다릴게.”


얼마전에 예전에 갔던 그 상점에서 쇼군 독일에서 먹었다는 그 학센? 크리스마스 한정으로 판다고 예약받는 거야. 그래서 미리 주문은 해뒀지. 날짜 맞춰서 배달해준대. 아, 근데 대기실에서 먹는게 좋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양이 적으려나. 멤버들도 나눠주게 좀 넉넉히 살 걸 그랬나.

주문한 양을 체크해 봐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마츠모토의 양 발을 한번 더 꾸욱 밟아 누르자, 결국 다시 앉아버린 마츠모토가 사쿠라이를 바라봤다. 내일 확인해도 되잖아. 나 아침에 일찍 나가야해.


“그러니까 나한테 조금 더 집중.”


그러자 마츠모토가 웃음을 터뜨리며 제 발을 빼내서는 다시 사쿠라이의 발 위에 얹었다. 아까 했던 거 다시 해봐. 쇼군, 피아노 연습하는 거 들어줄게.

크리스마스에도, 딱 이정도면 충분하니까.

아라시 / 사쿠라이 쇼 / 마츠모토 쥰 / 쇼쥰 / 쇼준 / 사쿠쥰 / 사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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