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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 여름의 이름

SPICA*쥰 2018. 8. 30. 21:23

분장실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와 버린 마츠모토가 자신의 생일 서프라이즈 계획을 듣게된 탓이었다. 어느샌가 대기실 안쪽에 들어와 있는 마츠모토를 조금 늦게 발견하고선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즐겁게 제 앞에 펼쳐 놓고 있던 무언가를 감추기 시작한 아이바. 그리고 녹화 전에 답지 않게 들뜬 기분으로 마츠모토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우고선, 뒤따라 대기실로 들어오던 사쿠라이와 함께 복도로 내쫓아낸 오노. 아마 그 둘은 그나마 개중에서 제일, 마츠모토가 쉽사리 내치지 못할 사쿠라이에게 그를 맡기는 게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을 터였다.


“문 열어, 너네 이미 서프라이즈 망했다고! 나 대본 읽어야 한단 말야.”

“포기해. 아이바가 마음 먹으면 어떤지 알잖아.”


언제나처럼 겉으로는 조금 툴툴거렸지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겠다는데 진심으로 기분 나빠할 수는 없었다. 못 이기는 척 사쿠라이를 따라서 방송국 복도 끝 휴게실로 향하지 않았으면 조금은 달랐을까.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던가. 베란다에서 맨발로 내려선 마츠모토가 시작점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비가 퍼붓는 것을 마냥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초인종이 울렸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현관으로 향하면서 따로 인기척을 내려 하거나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맨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택시에서 내려 걸어온 것인지, 방송국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 현관에 들어선 사쿠라이는 온통 젖어 있었다. 어차피 씻을 터였지만, 마츠모토는 욕실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가져다주고선 먼저 말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빗소리를 들었다. 침실 커튼 너머로 둔탁하게 들려오는, 유리창에 부딪히는 물방울 소리가 어쩐지 어떤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했던 나머지, 사이사이 욕실 쪽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탓에. 뜬금 없이 휘파람이나 불어보려 했지만, 역시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왜 매번 자신에게만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일까. 그렇게 모든 것에 서툴기만 한 자신을 원망하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저마다 각각의 재능과 야망과 반짝임을 지닌 비슷한 또래와 가까이 모여있다는 것은─물론 그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기 자신의 가장 엄격한 평가대에 올려놓는 과정을 지리하게 반복하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렇게 대단한 재능도 아닐진대.


언젠가 치기 삼아 넘었던 선을 다시 넘는 것에는 아주 조금의 핑계가 필요했을 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계절이 반대인 대륙에서 갑자기 마주하게 된 여름. 새벽 일찍부터 숙소를 나서서 강렬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한바탕 체력을 몰아 쓰고 나서도 매일 같이 이른 저녁부터 몇 번이고 몸을 섞었다. 얼추 백 명에 가까운 출연진들과 스탭들과 함께 간 대규모 로케여서, 국내에서보다 보는 눈이 더 줄어든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따로 방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만 겨우 붙들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뜨거운 모래에 달궈진 여름의 열기가 깃든 자신들의 몸이, 이제 갓 어린 티를 벗어내기 시작한 얼굴 아래 품고 있는 욕망이 어떤 모양인지 모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열 몇 시간씩이나 비행기를 타고 간 곳에서, 좀처럼 자주 오지 않는 기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쿠라이와 마츠모토가 그런 것을 절대 잊을 리가 없음에도 낯선 풍광, 치기어린 경쟁심, 그들이 ‘성실한 아이돌’이어야 하는 곳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낮 동안 한껏 고양된 흥분은 밤새 쉽사리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그 때가 처음도 아니었고, 딱히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어느새 또 다시 사쿠라이와 한 침대에서 뒹굴고 있게 된 것에 마츠모토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다만, 일본으로 돌아와 다시 맞은 여름의 콘서트 투어 도중에 시작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외였달까. 콘서트야말로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그 비슷한 것이리라고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지만─ 한껏 뛰놀고난 육체에서 갈 곳을 잃은 에너지와 여전히 머릿속을 아찔하게 하는 흥분감의 스위치만 살짝 틀어주면 또 다른 욕구를 마구 풀어내고 싶게 해주곤 했으니까.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쾌감에 자못 도취 되어 온몸의 근육이 탈력할 때까지. 다 쏟아 내버리고 싶은 밤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 얼굴을 어떻게 매번 지워 냈는데.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으며 힘겹게 밀어냈는데, 이렇게 또 쉽게.

마츠모토가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를 사들이는 것마냥 오로지 충동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마도 사쿠라이가 원하는 것만큼은 규칙적이거나, 당사자간의 깔끔한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나 어정쩡한 것은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시작이야 어쩔 수 없었다면, 늦기 전에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혹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즈음의 마츠모토 쥰이라면; 그러면 좀 어때서.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뭐가 그렇게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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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 / 사쿠라이 쇼 / 마츠모토 쥰 / 쇼쥰 / 쇼준 / 사쿠쥰 / 사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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