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ep end

[아라시팬픽/쇼쥰] 해열제 본문

팬픽/단편

[아라시팬픽/쇼쥰] 해열제

SPICA*쥰 2019. 2. 4. 12:04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닫은 현관문에 어깨를 맞붙이고서야 사쿠라이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겨드랑이 아래로 양팔을 둘러서 가슴과 가슴이 밀착되어 있는 남자 역시 입안에서 무언가 중얼거렸지만, 귀를 가까이 들이대어 보아도 어떤 단어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만 아니었더라도, 아무런 보호막 없이 맨 목덜미에 바로 닿아오는 숨결이 타오를 듯 뜨겁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사쿠라이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만 있다면 적어도 5분 이상은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츠모토가 현관 바닥에 주저앉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몇 년 만의 둘만의 저녁 식사였다. 다른 멤버도, 그 어떤 완충제 역할을 해줄 만한 사람 없이 단둘이서는. 명목상으로는 콘서트 회의를 빙자한 만남이었지만, 그동안 왜 그렇게 망설여왔던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예전의 어느 날처럼, 이야기는 편하게 쉴새없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서로 번갈아가며 자처해서 고기를 구우면서, 맥주를 들이키면서 콘서트의 이야기부터 이런저런 방송국 주변의 이야기, 또는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접점에서 만난 평범한 삶의 이야기까지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조금 발그레 달아오른 것 같은 마츠모토의 볼과 목덜미에 자꾸만 머무르는 시선을 숨기려 사쿠라이는 더욱 신난 목소리로 지난 몇 년간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의 보따리를 주섬주섬 끌러냈다. 결국 술기운이라는 것이겠지만. 

눈가에 잘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주는 마츠모토는 한번도 멀어지지 않은 것처럼, 둘만 남겨지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어색한 침묵이 오가던 시기 같은 적은 없었다는 것처럼 낯익고 반가웠다. 어쩐지 본격적인 이야기, 더 이상 마음 속에만 담아둘 수 없어서 오늘 만나자고 했던 목적은 아직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아직 밤은 그리 깊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언저리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주제에도 사쿠라이는 조급해하진 않았다.

그렇게 제 다짐을 생각하느라, 오직 저만을 향한 마츠모토의 미소를 보고 싶다는 그런 욕심을 다스리느라, 저녁 내내 마츠모토를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정말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한참 동안 최근에 보았던 영화에 대해서 재잘대더니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야할 것 같다며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던 마츠모토가 발을 헛디딘 것인지, 미끄러지며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주저 앉아버렸다. 깜짝 놀란 나머지 맥주잔이 엎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 옆에 달려가 상체를 일으켜 주면서야 마츠모토의 온몸에서 꽤 높은 열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술의 취기에, 불의 열기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마츠모토 역시 저와 둘만의 자리라는 것에 조금 들뜬 것이려나. 그런 한심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자책할 뿐이었다.



“슈, 그 녀석이 말야.”


티비지 인터뷰 중에 무려 10살 넘게 차이가 나는 남동생의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었던 것을 계기로, 레귤러 촬영 중 쉬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떠들어댔다. 어쩌면 키도 나보다 더 커버릴 지도 모르겠다니까. 셈도 빠르고, 우리 집안에서 운동 신경도 남다르고. 처음 듣는 이야기일리가 없는데도 여전히 시끄럽고 즐겁게 맞장구쳐주는 멤버들의 반응에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으쓱할 뿐이었다. 


“근데 얘도 이제 사춘기인가봐. 그 조그맣던 게.”


얼마 전에 있었던 사소한 다툼의 전말은 차마 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유치해서. 다툼의 원인보다는 이제는 이렇게 말다툼을 할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이랄까? 다들 이런 내 마음을 알아? 왜 이렇게 서운한가 몰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그 동안 제 주변의 멤버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은 채, 맞은 편 소파에 기대 앉아 만화책을 들여다보던 마츠모토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구.”


손을 뻗어 사쿠라이의 폰 버튼을 대신 누르며 대답하는 아이바의 말을 들으면서, 어쩐지 마츠모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츠모토 역시 여느 때와는 달리, 사쿠라이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피하지 않은 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제껏 이야기 안 듣고 있는 척 하더니.


“그러게, 마츠쥰도 그랬었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재미없는 농담이었다며 주어담을수도 없게 진지하고 또박또박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는 며칠 동안 혼자 되짚어보아도 그저 충동적이었다고 밖에 변명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순전히 충동만은 아니었다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 다시금 팽팽해진 공기 속,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듯한 멤버들의 뒤통수 너머로 마츠모토의 흔들리던 눈동자는 무언가를 다짐한듯이 다시금 되돌아와 사쿠라이를 마주보았다. 


“그게 아니라는 거 제일 잘 아는 주제에.”



맨션 지하주차장 입구 안까지 들어와준 택시에서부터 엘레베이터, 그리고 집 앞까지, 그리 길지 않은 거리를 가로지를 뿐이었다. 다만 혹시라도 이 늦은 시각에도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수상해보이지 않도록 겨우 무거운 몸을 들처메고 왔는데, 현관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몸에, 두 다리라고 제대로 힘이 들어갈 리가 만무했다. 자꾸만 현관문과 벽 사이를 휘청거리는 몸을 붙드느라 다급한 사쿠라이의 양손 바닥에 아까부터 식은 땀을 흘려대는 통에 이미 흠뻑 젖어버린 마츠모토의 얇은 셔츠가 닿아왔다. 마츠쥰, 하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어르듯 불러보면 이름이 불리운 것에 또 한번 작게 중얼거리는 대답이 들려오긴 했다.


“쇼군..”


양 볼을 가볍게 톡톡 쳐보아도 떠질 줄 모르는 눈꺼풀에 작게 한숨을 쉬고선, 마츠모토의 신발을 벗겨주려 현관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끙 하는 소리를 내던 마츠모토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기 시작했고,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사쿠라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토하지마!!"


사쿠라이의 본능적인 걱정과는 달리 그의 등에 닿아온 것은 높은 체온의 말랑한 살집의 감촉이었다. 어느덧 벽을 타고 내려와 앉은 마츠모토는 거꾸로 사쿠라이의 등을 껴안고서는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제서야 다시 한번,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가까움에 사쿠라이의 뒷목에 작게 소름이 돋았다. 몸을 늘어뜨린 마츠모토는 사쿠라이의 허리 근처에서 방황하던 손을 올려놓고선, 느릿하게 작은 원을 그리며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마츠모토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은 적막 끝에 겨우 입을 뗐다.


“마츠쥰, 열 많이 나잖아. 가서 쉬자.”

“응, 쇼군.. 내가 미안해.”


아까부터 줄곧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이제는 울컥 화를 쏟아내고 싶었지만, 술에 취해서, 열에 휩싸여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대라는 것을 다시금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내가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마저도 몇 년이나 늦어버린 제 탓이니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지만. 찌르듯이 아파오는 코끝을 몇번이고 찡그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침대로 가자.”


이렇게 내뱉을 줄은 전혀 몰랐던 대사에, 대답은 어딘가에서 사라졌다. 



급하게 서랍장을 뒤져 찾아낸 해열패드 하나를 반듯한 이마에 붙여주고,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켜 겉옷만 벗겨내고 다시 눕히기까지 하고 나니 열이 나는 마츠모토 뿐만 아니라 이미 사쿠라이의 머리카락까지 땀에 흥건 젖어버렸다. 몸을 닦아줄 물수건과 미지근한 물컵을 챙겨 침대로 돌아오면 마츠모토는 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고 색색, 고르지 않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힘겹게 숨을 들이키는 목울대가 울리는 것을 보며, 열을 재려는 것마냥 오른손을 뻗어 목덜미에 가져다댔다. 차가운 살갗에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떠는 마츠모토를 보며, 역시나 후끈하게 달아오른 피부에 사쿠라이 역시 재빨리 손을 떼고선 지릿거리는 듯한 손가락 끝을 매만졌다.

가게 뒷문에서 마츠모토를 부축한 채로 택시를 기다리며, 언제부터 이랬던 거냐고 다그쳐보면 의외로 순순하게 전날 밤부터 도진 감기 기운에 약을 먹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급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닌, 미뤄도 그만인 술 약속인데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마츠모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쿠라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사쿠라이를 다시 한번 더 없이 속상하게 만들 뿐이었다.

성치 않은 상태로도 기어코 혼자 집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것을 모르고 술까지 먹인 것에 책임은 자게 해달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고집이 꺾이고, 피부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에도 꺾인 것인지 나란히 앉은 택시 뒷자리에서 한참을 말이 없길래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등받이에도 제대로 기대 앉지 못해 늘어지는 몸을 바라보며 망설임을 거듭하다 결국 어깨를 끌어안았다. 삼키지 못하고 조금씩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들으며 그저 어깨를 토닥일 수 밖에 없었다. 

몇년 간을 꺾이지도 않은 채 홀로 품으며 단단하게 쌓아올렸을 마츠모토의 그 모든 마음을 감당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 긴 시간 동안 나름의 고민을 해 왔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답을 구해낼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도망치지는 않겠다는 작은 용기 정도로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면, 그동안 일방향으로 자신만을 향해온 그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조금씩 되돌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며.



침대 발치에 걸터 앉아 생각에 잠겨 한참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마츠모토의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다시 잠이 드는 건가 싶어 땀으로 끈적한 제 몸이라도 씻고 오려고 침대에 걸터앉았던 몸을 일으키면, 그새 가지 말라는 듯 마츠모토의 오른손이 뻗어왔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아주며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을 듯 한 이야기를 전했다. 나 안 가, 여기 우리 집이거든. 자고 일어나서 이야기해. 


“미안해, 쇼군. …아프다고 말 안 해서.”


욕실로 향하는 사쿠라이의 등 뒤로 마츠모토의 목소리가 작게 따라왔다. 미안하다는 이유는 아마 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진짜 속 마음까지는 다 털어놓지 못하는 것에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었다.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랜 시간 보듬어 가야 할까. 


“...그러게 미안할 짓을 왜 해.”


사실은 제가 해야할 말이지만. 그동안 열병처럼 치부하려고 했던 거, 겁쟁이어서 미안하다고.  그런 고백은 조금 더 늦어도 내일, 내일은 들려줄테니까. 어쩌면 갑작스럽다고 느낄지도 몰랐다. 그저 충동적인 것이라고, 동정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밀어내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과한 반응이 아닐 것이다. 타고난 말재주로도, 어디서부터 어떤 말로 이야기하면 좋을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열이 내릴 때까지. 여전히 마음을 끊어내지 못한 것에 애달퍼하는 그 꿈에서 깨어나기만을 여기서 기다릴 거니까. 

아라시 / 사쿠라이 쇼 / 마츠모토 쥰 / 쇼쥰 / 쇼준 / 사쿠쥰 / 사쿠준



'팬픽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시팬픽/쇼쥰] 둘이서 있으면  (0) 2018.12.31
[아라시팬픽/쇼쥰] Shiver  (0) 2018.10.31
[아라시팬픽/쇼쥰] VERTIGO (회지 샘플)  (0) 2018.10.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