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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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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2

SPICA*쥰 2018. 7. 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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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아침은 주말이었다. 쥰은 쉬는 날이라는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살짝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아침 제일 먼저 겪고 싶지는 않았다.

아스피린을 입에 털어 넣고 약효가 들기를 기다리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머리통을 감싸 쥔 쥰은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살펴 보았다.

폰을 켜자 니노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보였다. 나 집에 왔어, 고마워 라는 간단한 문자에 졸린 표정의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니노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엄지 손가락 이모티콘이었다.

니노와의 대화창에서 빠져나온 후, 쥰은 메시지들 중 상단에 있는 ‘쇼’라는 알 수 없는 이름에 미간을 찡그렸다. 메시지 미리보기로는 전혀 알 수 없어서 전체 대화를 읽기 위해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답장이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존댓말로 적힌 문자에 쥰은 찌푸렸다. 아이바쨩에게서 제 번호를 받으신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답장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쥰은 전날 밤에 자신이 보냈던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쇼상, 이라고 적혀 있었고 쥰은 술에 취해 쉽게 설득당하고 만 자기 자신을 발로 차고 싶었다. 아이바상이 나에게 당신 번호를 줬어요. 당신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 연락해봤어요. 관심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해줘요.

그럼, 쥰

폰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쥰은 쇼의 답장을 마저 읽었다.

제가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가능한 가장 신중한 방식으로요. 너무 많이 자세하게 묻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볼 수 있을까요?

“안 되고 말고.” 쥰이 크게 외쳤다. 관두고 싶었다. 아이바에게 잘 안 됐다고 이야기하고, 월요일에 니노에게는 미스터 슈가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시간을 낭비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바는 물론 아이바였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대충 소개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쥰은 자신의 말을 조금 더 좋은 말투로 표현하기로 했다.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조금 불편하네요. 당신에게도 똑같은 걸 요구할 생각이 없거든요. 하지만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아마 당신이 원하는 건 이거겠죠), 사진을 하나 보내요.

쥰은 왼손으로 만든 브이 모양의 사진을 찍어, 문자에 이어 보냈다.

거의 바로 ‘입력중’이라는 말줄임표 표시가 떠올랐고, 이제 쥰의 모든 관심은 그의 폰에 쏠려 있었다.

얼굴 사진은 보내지 않는 걸로. 알겠습니다. 피부가 매우 하얗네요.

쥰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돌아다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걸로 당신의 호기심이 충족됐을까요? 쥰은 쇼의 코멘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물었다.

네. 이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시나요? 

쥰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당신에게 얼마만큼이든지 내 시간을 조금 쓰게 되면, 그럼 그 대가로 뭔가를 받겠죠. 의문문으로는 쓰지 않았다. 이걸 하기로 한다면, 그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에 대해 거의 99퍼센트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해요. 전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무해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당신에게 답례를 할 겁니다. 상황에 따라선, 답례의 개수는 많을 수도 있어요.

“난 당신 돈이 필요한 건 아냐.” 듣는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쥰은 말했다. 그의 새 연봉을 생각하면 돈이나 선물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날 밤 아이바는 쥰이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쥰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쥰은 모른다는 사실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쥰은 답장을 기다리지 않은 채 이어 메시지를 적었다. 이걸 다른 사람들이랑 오래 해왔나요?

말줄임표 신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이 ‘쇼’라는 남자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쥰은 자신의 말을 사려 깊게 고르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쥰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아이바가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었다. 아이바는 무능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었고, 그건 양쪽에게 모두 해당되는 것이었다. 쥰에게 그가 추천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바가 그에게도 쥰을 추천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니까.

왜죠? 쥰이 물었다.

전 의지가 되어주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요, 가 그의 답장이었다.

이 사람들과 사귀게 된 적도 있나요?

네, 몇 사람과는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게 알고 싶은 것이라면요. 왜 갑자기 궁금해지셨죠?

쥰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당신이 내게서 뭘 원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당신이 맞춰야 할 기대치나 자격 리스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건 취업 인터뷰 같은 게 아니니 당신이 편한 대로 맞춰서 가보죠. 아까 말한 대로, 얼굴은 보이지 않기. 또 있을까요?

쥰은 상대가 보이는 의욕에 놀랐다. 얼굴을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것에도 이 남자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도 물러나지 않을 것인지 궁금해졌다. 난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좋습니다.

이건 쥰의 미간을 찡그리게 했다. 완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런데도 아직도 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을 거라는데도요?

네.

왜요?

이건 날 행복하게 하니까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군요, 쥰상.

당신의 이유가 이해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뭐, 나한테 뭔가를 사주는 게 당신을 행복하게 한다고요?

말줄임표가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게 사라지자 쥰은 찡그렸던 미간을 살짝 풀었다. 아뇨. 당신이 갖고 싶어한 것을 내가 사줘서 당신이 행복하게 된다면, 그게 날 행복하게 할 겁니다. 이러면 더 이해하기 쉬울까요? 난 의지가 되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잖아요.

잠시간 쥰은 자신의 폰을 응시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하지 못한 채. ‘쇼’라고 하는 이 사람이 누구든 간에 이미 쥰의 관심을 끌었고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쥰은 이 사람을 파악할 수 없었고, 쥰은 그런 기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진짜’ 사람이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죠?

쥰은 소세지와 스크램블 에그를 반쯤 먹은 아침 식사 사진을 받았다. 사진 오른쪽에는 포크를 쥐고 있는 손이 있었다.

또 한번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아마존 위시리스트를 보내주면 좋겠어요.

쥰은 거의 코웃음을 칠 뻔 했다. 자신이 읽은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만 빼고. 거기에 아무거나 넣어도 되는 거고요?

기본적으로는요. 그게 위시리스트의 목적이니까요. 다 넣고 난 다음에 이 이메일 주소로 링크를 보내주세요.

휴대 전화의 기본 이메일 주소가 온 것을 보고 쥰은 이제 정말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었다. 갖고 싶었던 페이퍼백 소설책도 있었고.

내가 이걸 하기로 하면, 쥰은 침착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쳤다. 나한테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는 거죠? 난 당신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자위하지는 않을 거예요.

놀랍게도, 웃는 이모티콘들이 연속으로 왔다. 사실, 전 위시리스트를 받자마자 당신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무해한 일들’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분명하게도 쇼는 보상으로 무언가를 바랄텐데?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니노는 그를 ‘미스터 슈가’라고 불렀다. ‘슈가’가 없다면… 이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까?

난 아직도 이것에 대해 의심이 들어요.

이해합니다. 나도 비슷한 걱정이 되네요.

정말로 섹스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을 건가요? 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안 할 겁니다. 즉각적인 대답이 왔다.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이 편하게 느끼는 것만 할 거예요. 내가 이 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당신도 이 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몇 분 동안 쥰은 머릿속에서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장점과 단점을 재며. 니노가 여기 있다면, 걱정은 그만두고 그냥 시작한 다음에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그 생각이 들자, 쥰은 수긍하며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번 해보죠.

이메일 기다릴게요. 좋은 하루 보내요.

마지막 메시지에 어떻게 답장하면 좋을지 몰라, 쥰은 앱을 바꿔 아마존에 로그인했다.

그가 원하는 소설 책 재고가 아직 있기를 바라며.




쥰은 오후 내내 일을 해야 했다. 팀 리더들에게 작업 과제를 메일로 보내는 것부터 월요일 오후에 회의 스케쥴을 잡는 것까지. 비서 없이 모든 것을 관리해야 했지만, 쥰은 그의 부서에 이 정도의 통제력을 지니게 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업무 이메일을 닫을 수 있었고, 한가하게 폰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 하던 중에 위시리스트가 떠올랐다.

완성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벌써 10개의 아이템이 담겼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잊어버리기 전에 쇼가 알려주었던 이메일 주소로 링크를 보냈다.

답장 알림이 울렸다. 쇼가 이렇게나 빨리 답장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서 쥰은 놀랐다.

리스트 고마워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쥰이 답장했다.

또 다른 웃는 이모티콘이 왔다. 괜찮아요. 내킨다면 더 추가해도 됩니다. 문자할 시간 있어요?

쥰은 내일을 위해 모든 업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네. 더 협의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네. 만나지 않기, 셀카 없이, 섹스도 없이, 라고 하셨죠. 더 있을까요?

쥰은 생각했다. 이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은 이제 그는 부장이고, 자신에게 기꺼이 선물을 사주는 사람과 함께 목격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슈가든 아니든, 절대로 이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보여서는 안됐다.

셀카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쇼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쥰의 속마음 중 일부는 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강한 충동은 아니었다. 둘이서 만나거나 하지 않기로 했으니, 딱히 열렬하게 쇼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섹스를 하게 된다면 둘이 만나서 서로의 얼굴을 봐야하기 때문이었다. 쥰은 이미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뭘 더 요구할 수 있을까?

난 전화하지 않을 거예요. 시간이 될 때 문자만 할게요.

쇼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빨랐다. 그건 좋습니다. 나도 긴급 상황에서만 통화하니까요.

바에서 아이바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몇몇 조각들이 맞춰 들어가자 쥰이 갖고 있던 의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항상 당신한테 연락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일을 할 때는 말이죠.

저 역시도 일이 있으니 저에게도 좋습니다.

쥰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폰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가 말이 되지 않았다. 무해한 것을 요구할 거라고 했죠.

네, 그럴 계획입니다. 당신의 일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당신이 저에게 말해주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요. 사진도 좋습니다. 저에게 공유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고마울 겁니다.

쥰은 자신의 일상이 뭐가 그리 흥미로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기술부 부장이라는 것을 쇼는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디테일을 밝힐 의도도 없었다. 난 풀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약속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상관 없습니다. 이걸 진행하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하고 싶나요?

쥰은 잠시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스스로가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쇼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의 시간. 네, 스스로를 말리기 전에 쥰은 타자를 쳤다. 이게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게 될지 알고 싶어요.

저와 같은 생각이라니 기쁩니다.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시 협의하면 되니까요. 최소한 우리가 이걸 하는 동안 당신이 즐거운지 아닌지 알고 싶어요, 쥰상.

쥰은 문자 하나에 그만큼의 신실함이 담겨 있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한 문단일 뿐이지만, 아이바가 추천해준 쇼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쥰이 답장을 하기 전에 쇼에게서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무서워졌나요?

쥰은 코웃음을 치는 자신의 모습을 쇼가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아뇨, 제가 왜요?

상대가 5분 동안 침묵하더니 너무 부담스럽다면서 관둔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봐, 조금 더 수월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무섭지 않아요. 문자를 통해 그의 짜증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쥰이 부정했다. 그냥 생각 중이었어요.

오, 그럼 천천히 하세요.

쥰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서는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난 오늘 업무 이메일을 보내고 제안서를 작성했어요. 얼마나 지루했을지 아마 당신도 상상할 수 있겠죠.

쇼에게 자신의 하루에 대해서 털어놓기로 한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쇼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일 수도, 아니면 그저 지루해서일 수도 있지만, 쥰은 활짝 깨어난 느낌이었다. 알아내야만 한다는 그런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뭘 알아야 하는 건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오후 내내요? 가 쇼의 답장이었다. 정말 지루하게 들리긴 하네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교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요. 일을 훨씬 쉽게 만들어줄 텐데요.

미소짓는 이모티콘이 왔다. 하지만 당신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업무가 실현되는 과정을 다 보는 게 낫죠? 그렇지 않아요?

쥰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쇼가 진정으로 이해하는지 궁금했다. 그 정도의 통제력이야말로 쥰이 일을 한다는 것에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방면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다 알기 전까지는 편히 쉴 수 없는 타입이었다. 네, 그렇게 해야 오류를 찾기 더 쉬우니까요. 스스로에게도 정말 재미없게 들리는 내용이어서 여전히 답장이 왔을 때에는 솔직하게 놀랐다. 쇼가 정말로 쥰이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듯이.

둘은 계속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무해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 몇몇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쥰은 쇼가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류의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떤 것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지고 하품을 나오기 시작하자, 쥰은 뭔가 가벼워진 기분이었고 오늘 밤은 더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수면 사이클 앱을 맞춘 다음 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좋은 밤 되세요.




수면 사이클 앱은 지난 밤의 수면 품질을 84%로 평가했다. 휴가 중이 아니라면 달성할 수 없는 수치였다. 쥰은 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그 전날들의 45%, 53%의 수치들과 비교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침 6시였다. 쥰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말 간만에, 특히 승진을 하고 난 이후로, 정말로 잘 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 쇼의 답장이 와 있었다. 좋은 밤 되세요, 쥰상. 그리고 새벽 4시에 또 다른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가 메시지의 전부였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답장을 하기로 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놀라울 정도로 정말 잘 잤어요.

쥰은 답장을 기다리지 않은 채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쇼 역시 바쁜 사람인 것 같았으니까─물론 어떤 회사도 새벽 5시부터 근무를 시작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쥰은 집을 나서려는 참에야 폰을 집어 들었고, 메시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작게 미소지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이제 출근하시나요?

쥰은 급하게 문자를 치고서 폰을 자켓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네. 지하철 타고서요. 다른 사람들처럼요.

쥰이 지하철 안에서 폰을 확인해 보았지만 이번 메시지는 답장을 얻지 못했다. 그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업무 이메일들에 집중했다. 회의 일정 확인, 마감 일정 조정, 이번주 말에 계획중인 송별회 파티를 위한 제안들. 쥰은 아이디어들을 승인하기도, 기각하기도 했다.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면서까지 쥰은 폰에 집중해 있었다.


오늘은 니노가 ‘인턴 셔플’이라고 말하곤 하는 날이었다. 이제는 쥰이 누군가를 교육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부장이 된 그에게 인턴들이 소개될 것이었다.

쥰은 딱히 인턴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인턴이었던 적이 있었다. 다만 3주마다 인턴들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가 서명하고 승인해야 할 서류들이 더 많아지는 것 뿐이니. 어느 팀이 어느 인턴을 데려갈지를 지정하고, 그들의 업무 진도에 대해 계속 보고 받는 것 역시 그가 할 일이었다.

“너 완전 비서 구해야 돼.” 토마의 말에 그제서야 쥰은 토마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겨우 월요일인데, 벌써 금요일의 얼굴을 하고 있잖아.”

“아니거든.” 쥰은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바로 그 말 때문에, 너희 팀이 인턴 데려갈 거야.”

토마가 신음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쥰. 저번 인턴은 복사기도 제대로 못 다뤘다니까!”

쥰은 그저 미소 지으며, 이미 결정해두었던 것들을 수정했다. 토마는 니노와 마찬가지로 팀 리더이고, 쥰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으로 비슷한 취미와 브랜드 취향을 갖고 있었다. 토마가 자신과 같은 향수를 쓴다는 것은 쥰을 성가시게 했지만, 아무리 그걸로 토마를 괴롭혀보아도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 사람을 교육시키는 건 너한테 달려있어.” 쥰은 토마의 체념한 표정을 즐기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했다. “프린터나 복사기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해. 팩스 머신도 안돼.”

“그 때 팩스 머신을 고장낸 건 내 인턴이 아니었어.” 토마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걔는 너네 인턴이었잖아. 네가 부장되기 전에.”

쥰은 솔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필수 기기 중에 하나라도 부주의하게 다뤄지게 되면, 팀 리더들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매정하긴.” 토마는 감정 없이 대답했지만, 이내 곧 미소를 지었다. 쥰은 그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사무실 층에 도착하자, 쥰은 자신의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직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사무실을 빠르게 둘러보자, 니노가 벌써 큐비클에 도착해서 커피 머신으로 머그컵에 커피를 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간 쥰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새로운 서류들에 한숨을 나오려는 충동을 억눌렀다. 몇 개는 경영부로부터, 또다른 몇 개는 마케팅부와 재정부에서 온 것이었다. 쥰은 수요일까지는 회계부 서류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고마울 지경이었다.

나머지 아침 시간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쥰은 폰으로 스포츠 뉴스와 연예 가십을 들여다 보았다. 그 날 해야 할 일의 30% 정도만 겨우 완료했을 뿐이었다.

그때야 기억이 났다.

그는 반쯤 먹은 시저 샐러드를 바라보고선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의 아래쪽에는 포크를 쥔 자신의 손가락들이 찍혔다.

그는 잎사귀 이모티콘과 함께 쇼에게 사진을 보냈다.

쥰은 딱히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1분도 되지 않아 그의 폰이 울리는 것에 감사했다.

샐러드에 양배추가 많네요.

쥰은 미소지었다. 양배추를 마지막까지 남겨놓거든요.

초식 동물인가요? 가 쇼의 다음 메시지였다. 농담이에요. 비건이신가요, 쥰상?

그냥 건강하게 먹는 거예요. 가끔 고기를 먹을 때도 있답니다. 비건이 될 만큼 열성적이진 않아서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그리고 쥰은 한나절 치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어놓았다. 쇼가 샐러리맨의 지루한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쇼 역시도 같은 업무 선상에 있다는 쥰의 의심이 맞다면 최소한 이해는 해줄 것이었다.

쥰이 쇼에게 불만을 털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자─심지어 부서에 커피 크리머가 다 떨어져서 대부분의 여직원들이 짜증이 났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쇼를 겁주게 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겁을 줘보고 싶었다. 그러면 니노에게 미스터 슈가에 대해 보고할 것이 없어질테니.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쇼 사이가 어떻게 진행될지 정말로 알고 싶기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니노와 아이바가 그렇게나 확신하는 것처럼, 쇼가 미스터 슈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여성들은 몸매에 그렇게나 신경을 쓰니 커피도 블랙으로 마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선호하는 것은… 몇년이 지나도록 저에게 미스테리입니다. 어쨌든 당신의 사무실이 커피 크리머를 잃으셨다니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턴을 질책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요.

쇼의 답장 중 이 부분은 쥰이 작게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충분했다. 그 다음 부분을 읽자, 쥰은 자신의 그 지루한 메시지에서 쇼가 얼마나 재빠르게 반응하는 지에 대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스카이트리 빌딩을 보는 것만이 유일한 휴식이라니, 사무실 전경이 좋은 것 같네요. 전 한 번 가봤는데, 빌딩 마스코트랑 같이 사진을 찍은 줄 알았더니 엉뚱한 마스코트랑 셀카를 찍었답니다. 진짜 마스코트는 제가 다 가려버렸고요. 걔네 말로는 제가 ‘아저씨 셀카’를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간에요.

마지막 부분이 쥰의 관심을 끌었다. 걔네요?

언제나처럼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놀리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건 당신뿐만이 아니랍니다, 쥰상. 문장 끝에는 윙크하는 이모티콘이 붙었다.

쥰은 스크롤을 올려 토마의 놀리는 말에 대해 불평했던 부분을 읽어보았다. 쇼가 그의 문자에서 그만큼을 내용을 추론해서, 적절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솔직하게 놀라웠다. 쥰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가끔 너무 시큰둥할 때도 있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만 말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쇼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쥰의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말해야할지를 적절히 아는 것 같았다.

아저씨 셀카요? 아저씨인가요, 쇼상? 어쩐지 이번에는 쇼의 답변을 기대하면서, 쥰이 답장을 보냈다.

어찌 감히. 전 이제 35세의 고령이라구요.

5년만 있으면 마흔이네요.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나이를 잘 먹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죠, 쥰상.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쥰은 웃으며, 쇼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짜증이 났을까? 조금은 즐거울까?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거나 코를 찡그렸을까? 매일 주름을 세어보나 보죠?

당신이야말로 놀리는 타입이군요. 알았어야 했는데. 이번 주에 주름이 더 늘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쥰은 손목 시계를 확인했다. 업무에 복귀해야한다는 것을 깨닫자 분명한 실망이 흔적을 남겼다. 점심시간이 끝났어요.

제 점심시간도요. 무슨 일이 더 생긴다면 알려주시겠어요?

기적적으로 커피 머신의 크리머를 구하게 된다면, 알려드릴게요.

좋아요. 좋은 오후 되세요. 쥰상.

쥰은 빠르게 당신도요, 라고 쓰고선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월요일일 뿐이지만 어쩐지 이번 주에 남은 일들을 처리할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쇼와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일주일이 지났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저녁으로 뭘 먹을 계획인지, 장을 볼 것인지, 세탁소에 들를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쥰은 답장을 받을 때마다 초반의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공유하는 것들이 상대가 알 만한 가치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몇 달간보다도 더 잘 자게 되었고, 업무와 관련해서 무언가 사건─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관계 없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쇼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금요일에 도착한 소포는 그를 놀라게 했다. 쥰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영수증들과 함께 우편함에 처박혀 있었다.

건물 주인에 의해 수령 서명이 되어 있는 작은 상자는 너무 뻔한 가명─로저 페더러라니, 쥰은 믿을 수가 없었다.─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쇼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쥰이 최근에 테니스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쇼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파트 안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아마존 위시리스트에 추가한 것이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두꺼운 은색의 커프 브레이슬릿이었다.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싸지도 않았다. 매우 화려해 보였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리스트에 추가했었다. 그렇지만 쥰은 자신이 직접 사지 않는 다면 갖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잠시간, 쥰은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거실의 조명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그것은 마치 쥰에게 착용해보라고 하는 듯 했다.

그는 팔찌를 들어 손에 쥐고선 사진을 찍었다.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사진을 쇼에게 보냈다.

당신이 팔찌를 차기를 바랐는데, 그래도 도착했다니 기쁘네요, 가 쥰이 사진을 보낸 뒤 5분 후에 온 답장이었다.

쥰은 팔찌를 차고, 딱 맞는 핏을 찾기 위해 조절했다. 메탈이 그의 손목뼈를 긁을 정도로 딱 맞지는 않게, 그렇지만 벗겨질 만큼 너무 헐겁지도 않게. 완벽했다. 쥰은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을 묘사할 수 없었다.

커프스를 채운 후에 손목 사진을 찍어 문자와 함께 보냈다. 여기 있어요, 페더러.

웃음 이모티콘을 받았다. 마음에 들어요?

쥰의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그는 언제나 튀는 것들을 좋아했다. 네.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리스트에 추가하지 않았겠죠.

그럼 행복한 거죠?

네. 하지만 왜죠?

제가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당신이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죠. 전 당신이 그걸 갖기를 원했어요. 당신도 그걸 원했고요.

쥰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쇼에게서 마침내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여전히 노력 중이었다. 자신이 원한다면, 몸에 지닐 수도 있는 그런 진짜 물건을.

고마워요. 달리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쥰이 답장했다.

천만에요. 팔찌를 차고 나에게 보여줘서 고마워요. 잘 어울리네요.

쥰은 그 메세지를 받고 잘 이해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가, 몇 분 후에야 파스타 이모티콘과 함께 저녁 계획을 보냈다.

오늘 밤은 셰프 쥰이시군요. 칼질 조심하세요.

쥰은 답장으로 그럴게요, 만 보냈다. 하지만 그의 머리 뒤에서는 그의 메시지가 한 단어를 빠뜨렸다는 성가신 생각이 들었다.

맹세컨대 절대 문자로 쓰지는 않을 거였다. 비록 이미 쇼에게서 첫 번째 선물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쇼는 그의 미스터 슈가가 되었지만.

쥰은 한숨을 쉬었다. 그 별명이 정말로 싫었다.




“그래서 말인데.” 쥰이 담배를 피러 나오자 니노가 쥰을 한쪽 코너에 몰아넣었다.

“인턴 카와이가 내 성대모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거라면, 이번 주만 벌써 네 번째야.” 쥰이 니노에게 담배갑을 건네며 말했다.

니노는 거절하고선 자신의 담배갑에서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악의는 없지만, 쥰군, 난 네가 피우는 멘솔 담배 정말 싫거든. 그리고 아냐, 카와이에 대한 건. 하지만 걔 아까, 네가 가끔 하는 그 고개 까닥이는 걸 따라 했는데 전부 다 웃었어. 정말 포인트 잘 짚어내더라.”

쥰은 겨우 눈동자를 굴리려는 것을 참았다. “그럼 왜 날 귀찮게 하는 건데? 회계부에서 내가 검토해야할 서류를 더 가져다 준대?”

“아니, 서버 보수 이후로는 회계부 층에는 가까이 간 적 없어. 난 아이바씨가 부여한 임무를 위해 널 성가시게 하고 있단다.” 니노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스터 슈가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닥쳐.” 쥰은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며 거의 쉿-하고 소리를 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니노는 부서에서의 쥰의 위치를 위협할만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쥰이 또 한번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렇게 부르지 마.”

“하지만 그게 맞잖아, 안 그래?” 니노가 자신이 내뿜는 연기에 의해 대부분이 가려지는 그런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이바씨는 디테일을 요구하지는 않아. 그냥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만 알고 싶어할 뿐이야.”

“괜찮아.” 쥰은 말했다.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너는 뭘 알고 싶은데?”

“그 팔찌가 얼마짜리인지.” 니노가 말하자마자 쥰은 재킷 소매를 당겨 팔찌를 가렸다. 니노가 다시 웃었다. “아, 정말로 미스터 슈가에게서 받은 게 맞네.”

쥰은 팔찌를 받았을 때부터 계속 차고 있었다. 시선을 끌지 않도록 그의 드레스셔츠와 수트 재킷 아래에 감춘 채로. 액세서리가 회사의 드레스코드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 팔찌를 보이도록 하고 다닌다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 팔찌를 가까이 갖고 다니며 느끼고 싶었다. 그걸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하고 싶은 말에 신경을 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증거였다. 누구인지는 정말 하나도 모르지만, 쥰을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 쥰이 방어적으로 말했다. “팔찌 말야, 내 말은.”

“잘 어울리네.” 니노가 확인해주었다. “걱정하지마. 나랑 토마 정도만 눈치챘을 거야. 토마는 절대 묻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걸 경고로 생각해, 아마 똑같은 거 사려고 할테니까. 걔가 어떤지 알잖아.”

“그래, 정말 짜증나는 놈이지.” 쥰이 말하자 니노가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꼭 나랑 겹치려고 든다니까. 진짜 짜증나.”

“하지만 정말로, 쥰군. 그 남자한테 받은 거야? 미스터 슈가?” 이번에는 니노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니노는 니노이고 전혀 위협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니노가 손을 내저었다. “아이바씨가 좋아할 거야. 그 무엇보다도, 너한테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줬는지를 알고 싶어할 거야.”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어.” 니노가 찡그리자, 쥰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우리 안 만났거든.”

“우리 밀레니얼 세대[각주:1]잖아, 쥰군. 셀카라는 거 들어본 적 있지?”

“그래, 근데 셀카도 싫다고 했어. 만나는 것도. 그냥 문자만 해.”

니노는 쥰의 손목에 이제 거의 보이지도 않는 팔찌에 시선을 줬다. “문자만 하는데 그 사람이 벌써 그런 걸 줬다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비싸지 않아.” 쥰이 일축했다. “내가 직접 살수도 있거든.”

“당연하겠지. 하지만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잖아.”

쥰이 대답하지 않자, 니노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그걸 사준 거래?” 니노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여전히 그의 말투에는 불신이 묻어났고, 쥰은 진실을 말해주게 되면 그 불신이 더욱 강해지는 걸지 궁금해졌다.

“그냥 내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 쥰이 말하자 니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니까 그냥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야. 가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을 하지 않을 때도 있어. 하지만 그 사람 답장을 보면, 내가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것만 같아. 정말로 대화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그냥 문자만 한다고.” 니노가 반복했다.

쥰은 거의 한숨을 쉴 뻔 했다. “그렇다니까, 니노. 그렇게나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니노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띄웠다. “그렇게 설명이 되는군.”

이번에는 쥰이 찡그릴 차례였다. “뭐가 설명이 돼?”

“내가 그 인턴, 켄토였나? 걔한테 맡겼던 서류 기억나? 얼마전에 말야.”

“서류 빠뜨려가지고 개별로 전달해서 각각 서명받도록 해야했던 거 말이지. 기억해.”

니노의 눈은 이제 가늘어졌다. “네가 나랑 켄토에게 동시에 질책할 거라 생각했었거든. 근데 너,  나한테는 수습하라고만 하고 켄토에게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만 하더라. 너 뭔가… 더 부드러워졌어.”

부드러워졌다고? 쥰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어.”

니노가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손을 내저었다. “잊어버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 느낌일 수도. 어쩌면 네가 새 포지션에 잘 적응해서 잘 대처하게 된 걸지도 모르지.”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밀어 넣고서는 떠날 채비를 한 니노는 몇 걸음 걸어간 뒤에 어깨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면 그 문자들이 네가 여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 걸지도. 뭐든지 간에, 너 더 좋아보여.”

쥰은 담배 개피를 입술로 가져가려다 멈춘 채 홀로 남겨졌다. 주머니 안에서 그의 폰이 울렸고, 업무 메일이었지만, 폰의 잠금을 해제하자 아까 폰을 넣기 전에 메시지 앱을 끄지 않았던 탓에 쇼와 나누었던 대화창이 보였다.

니노의 말들이 그의 머리 속에 울려퍼졌고, 쥰은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더 잘 대처하고 있었다. 아직 비서를 구하지도 않고 모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지만, 하루치의 스트레스를 풀어낼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에 어차피 받게 될 스트레스를 더 늘리지 않기로 하며, 쥰은 회사 베란다에서 오후의 태양의 사진을 찍어 쇼에게 보냈다.

비가 오면 좋겠네요. 문자를 보내고선 앱을 넘겨, 그의 관심을 요하고 있는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니노가 관찰한 것들을 모두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아라시 / 사쿠라이 쇼 / 마츠모토 쥰 / 쇼쥰 / 쇼준 / 사쿠쥰 / 사쿠준

  1.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며, 여러 특성 중 여기에서는 SNS에 능숙하다는 점에서 언급되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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