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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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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4

SPICA*쥰 2018. 8. 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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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에서 열리는 컨벤션은 쥰의 회사가 속한 계열사들만을 위한 행사였다. 컨벤션의 초청 연사는 일본에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의 유명한 COO[각주:1]였다. 쥰은 몇 시간이나 이어질 리더십과 기업 시너지에 대한 강연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 전환 정도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쥰은 하코네에 데려갈 두 사람의 이름을 제출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니노와 토마와 함께 가기로 했고, 그 둘을 행사장 근처 어딘가에 함께 묵을 수 있도록 했다.

“어떻게 너는 다른 곳에 묵는 거야?” 행사장에 나란히 앉아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니노가 물었다. “상사가 누리는 특권인가? 토마 쟤는 자면서도 말한다고. 나랑 방 바꿔, 쥰군.”

“꿈 깨셔.” 쥰은 니노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는 여기까지 오려면 택시 타야해. 너네들은 그냥 걸어오면 되잖아. 너랑 방 바꿔주면, 넌 택시비 내기 싫어서라도 참석 안 할걸.”

니노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이건 회사에서 비용을 댄 컨벤션이잖아, 쥰군. 우리 부서에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난 당연히 참석하려고 노력할 거야.” 니노가 그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내 상사를 귀찮게 할 수 없지.”

“너 대신에 무로상을 데려왔어야 했어.” 쥰이 말했다.

“그건 끔찍한 생각이야.” 마침내 화장실에 돌아온 토마가 끼어들었다. “그 아저씨는 코 곤다고. 나한테 완전 지옥이었을 거야.”

“그리고 이젠 나한테 지옥이지.” 니노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집에 있었어야 했는데. 페르소나 5가 이제 막 출시됐는데 아직 충분한 시간을 바치지 못하고 있다니.”

쥰은 자신의 콧대를 주물렀다. “너네 불만 있으면, 인사과 가서 서류 제출해.”

“불평하는 거 아냐.” 토마가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그냥 니노가 못되게 구는 거지, 언제나처럼. 트윈 베드라 얼마나 다행인지.”

“작은 자비인 거지.” 니노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동의했다.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마 곧 시작할 거야.” 쥰도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팸플릿에는 오전 10시에 강연이 시작할 거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두드렸고, 쥰은 무대에 집중했다. 이 행사장에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 이 프로그램에서 빠져나가 하코네 관광을 하기로 마음 먹었더라도, 그들의 존재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기다리시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히가시야마상이 말하자, 쥰의 오른쪽에서 니노가 코웃음을 쳤다.

“‘히가시’가 끈기있게 기다리라고 한다면, 너한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거야.” 니노가 말했다.

“너 그렇게 불러?” 쥰이 반쯤 웃으며 물었다. “사장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부르는 거야?”

“왜 이래, 난 회계부 타카하시는 ‘대머리’라고 부르는걸.” 니노가 능글맞게 웃었다. “히가시쯤은 놀랄 것도 아니야.”

“얘 인턴들한테는 더 심한 별명들도 붙였어.” 토마가 알려주었다. “솔직히, 넌 알고 싶지 않을 거야.”

“난 내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라도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니노가 주장했다.

쥰은 연사 소개를 대충 들으며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무대 양쪽에 설치된 프로젝터는 이 초청 연사가 가진 여러 자격 증명들을 보여줬고, 쥰은 자신에게 25년 정도는 주어져야 해낼 수 있는 것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히가시야마상이 소개하는 이 사람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쥰은 히가시야마의 나이에 가까운, 아마 고작 몇 년 정도 더 젊은 사람을 기대했다.

“우리 점심으로 뭐 먹지?” 히가시야마가 앞으로 이틀 동안 강연을 할 저명한 연사를 소개하는 찰나에, 토마가 갑자기 물었다. “이거 점심 식사도 포함된 거 맞지?”

쥰이 눈동자를 굴렸다. “너 다음부터는 팸플릿 좀 읽어.”

“어디다 뒀는지 까먹었어.” 토마가 말했다.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마.”

또 다시 마이크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쥰은 더 잘 보기 위해 안경 너머로 눈을 찡그렸다.

“히가시야마상 말씀대로라면 제가 정말 멋진 사람처럼 들리긴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사가 수줍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니노와 토마가 수긍하며 웃음을 터뜨린 것 같긴 했지만, 쥰은 그의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잘 듣지 못했다.


그는 이 목소리를 알았다.

그럴 리가 없어.

“다시 한번, 좋은 아침입니다. 늦게 시작하게 된 점에 대해서도 직접 사과드리겠습니다. 잠깐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손을 흔들었고, 쥰은 고개를 훽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였다.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쇼, 그의 문자 친구이자 가끔씩 통화를 하곤 하는 쇼. 로저 페더러로 서명을 해서 물건을 보내는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COO 사쿠라이쇼였으며, 이틀간 컨벤션의 연사였다.

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쥰군?” 니노가 옆에서 물었다. “너 괜찮아?”

쥰은 쇼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완벽하게 하얀 치아들을 내보이고 있었다. 블루투스 리모콘 하나만을 들고서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략’이라든가 ‘의사 결정’과 같은 용어들이 들렸지만, 그 용어들은 서로 겹치며 흐릿해졌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쥰의 이해력이 흐려졌다.

쇼의 얼굴을 바라볼수록 쥰의 손목에 찬 팔찌는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 목소리와 선물들과 함께 떠올릴 얼굴을 마침내 보게 되었으니. 

쥰은 부정하지도 않을 생각이었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쿠라이 쇼는 멋지고 지적이면서, 또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볼은 약간 통통했지만, 미소지을 때 눈가에 자리 잡는 주름들이 있었다. 쥰보다는 덩치가 조금 작았고, 무대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쇼는 프레젠테이션의 페이지를 몇 장 넘기며 그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쇼는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도 블루투스 리모콘을 누를 뿐이었다. 마치 정확한 페이지 구성을 알고 있고, 각각 페이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자신감과 지성이 넘치는 유능한 연사였고, 쥰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야, 왜 그래?” 토마가 묻자, 쥰은 몸을 곧게 세워 앉으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갑자기 너무 더웠다. “바람이라도 쐴래?”

“난 괜찮아.” 쥰은 거절하며, 커프 브레이슬릿을 숨기기 위해 수트 재킷 소매를 끌어당겼다. “여행 때문에 피곤해서 그래, 아마도.”

쥰의 옆에 앉은 니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쥰은 쇼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고, 그의 미소를 엿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뱃속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싫었다. 쥰은 그들의 대화 중에 쇼를 저렇게 미소짓게 한 적이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쇼가 기술부 부장보다도 훨씬 커다란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쥰의 평범한 일상 속 고민들이 쇼의 삶에 작게나마 기쁨을 줄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쇼의 얼굴─그의 주름, 코의 모양, 양 볼─을 뜯어볼수록, 쥰은 그에게 그 모든 것을 보내주었던 남자라는 사실을 더욱 믿게 되었다. 지금 차고 있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팔찌. 정말 좋은 일이 있는 날에만 마시고는 하는 1983년도산 와인. 아직 다 읽지 못한 소설책들. 조종법을 완벽하게 터득하려고 하는 헬리콥터.

쇼가 쥰을 위해 예약해준 그 호텔 방. 한편으로는 쇼가 알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게 되었으니, 그가 쥰을 찾게 될 거라는─혹은 그 반대로─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쇼의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볼수록, 솔직하게 쇼는 몰랐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들은 도쿄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코네는 우연의 일치였고, 쇼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을 리는 없을 거였다. 쥰은 쇼에게 자신이 어느 회사에 일하는지 말 한 적이 없었고, 쇼가 그를 찾아봤다 하더라도 수백 건의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도쿄에는 수천 명의 마츠모토 쥰이 살고 있었다.

아마존 덕분에 쇼가 그의 이름과 주소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행사장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있게 되리라고 그가 아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쇼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쥰은 더 이상 쇼의 강연을 듣지 않고 있었다. 쇼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의 깊은 억양들이 그들의 전화 통화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였다, 정말로. 그 부분은, 처음의 충격에서부터 회복한 쥰은 어쩐지 납득할 수 있었다.

쥰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라면, 지금 이 모습은 그가 기대한 쇼의 외양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30대의 남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쥰은 쇼의 말투 때문에 뭔가 그가 더 연배 있는 외모일 거라고 상상했다. 쇼는 문자와 통화에서 모두 존댓말을 썼다. 농담도 존댓말로 했는데, 그 덕분에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쥰은 이상하게도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쥰은 청중 앞에 선 쇼가 모든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 매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이 강연을 듣고 있었다. 몇몇 젊은 사람들은 필기를 하고 있기도 했다.

자신의 모든 불만을 들어주었던 사람이 바로 지금, 어떻게 일을 더 잘 위임할 수 있는지, 진행 중인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팀의 잠재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었다.

깨달음을 얻고 쥰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니노와 토마에게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쇼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돌볼 것인지 가르치고 있었다. 쥰과, 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을 돌봐왔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쥰은 이 하코네 컨벤션에서 이런 결과를 얻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너 이제 좀 무서워지려고 해.” 니노가 언제나처럼 솔직하게 말했다.

쥰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쇼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신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나 안 보면 되잖아.” 쥰이 입을 다문 채 작게 말했다.

“그러려고 하는데, 네가 계속 안절부절못하니까 그러지.” 니노가 불평했다. “좀 가만히 있으면 안돼?”

아니, 못 그러겠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쥰은 발을 구르고 있던 겻을 겨우 멈췄다. 자신이 그러고 있었던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니노가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물었다.

니노에게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쥰은 “미스터 슈가가 바로 여기에 있어, 니노”라고 말한 후에 니노가 조용히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도 이렇게나 영향을 받고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래서 쥰은 그저 고개를 젓고서는, 니노가 안심할 수 있길 바라며 차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괜찮아. 그냥 뭔가가 생각나서 그래.”

토마가 쥰의 공간으로 몸을 기울였다. “마츠모토, 너 근육 하나만 더 움직이면 나 자리 바꿀 거야. 나 이 남자 이야기 좀 들어보려고 한다고. 뭔가 아는 사람 같다니까.”

쥰은 가능한 한 가만히 있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자세를 굳혀 꼿꼿하게 유지했다. 그는 쇼가 움직이고 이야기하며, 청중을 웃게 만드는 농담 몇 개를 던지는 것을 바라 보았다. 마침내, 늦어졌지만 그럼에도 무료인 점심시간이 되어 쇼가 강연을 중간에 멈추었을 때, 쥰은 반쯤은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다, 드디어.” 토마가 스트레칭을 했다.

“가서 우리 세 사람 자리 좀 잡아둬.” 니노가 토마를 쫓아내며 말했다. 토마가 떠나자마자 니노는 쥰을 향해 돌아섰다. “진짜로, 너 괜찮아? 너 저 남자가 이야기 시작하자마자 이상하게 행동했어.”

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으며 니노의 걱정을 떨쳐냈다. 자리에서 일어서 출구를 향해 가리켰다. “가서 점심 먹자.” 뭔가로 배를 채운다면 이 사건을 훨씬 잘 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츠모토군,” 히가시야마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쥰은 뒤돌아서며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붐비는 행사장에서 히가시야마가 어떻게 이렇게나 쉽게 그들을 찾아냈는지 쥰은 알 수 없었다. “따라오게. 우리 회사 부장들을 초청 연사에게 소개하려고 한다네. 시간 많이 걸리진 않을 거야.”

씨발. 쥰은 도망치고 싶었다. 토마를 따라 뷔페 테이블에 가서 지난 세 시간 동안 환영을 봤던 것처럼 하고 싶었지만, 그의 상사로부터 직접 받은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니노가 쥰의 어깨를 꽉 쥐었다. “이따 우리 찾아와. 음식 준비해둘게.”

니노가 떠나자 쥰은 히가시야마를 따라서 무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니노 말이 맞았다. 히가시야마가 무슨 말이든 하면, 다른 선택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쥰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쇼가 다른 계열사의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고, 쥰의 동료들이 그와 히가시야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히가시야마가 그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자,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고 쥰은 니노의 사랑스러운 ‘대머리’ 타카하시상 옆에 섰다.

“괜찮은 남자 같지 않나?” 타카하시가 말했다. 쥰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와서, 쇼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뒀으면 했다.

“그런 것 같네요.” 쥰이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으려 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너무 젊어. 마치 자네 같네, 마츠모토군. 젊은 데다 밝은 미래를 앞두고 있지.” 타카하시가 미소를 지었다.

쥰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타카하시가 쇼와 격정적으로 악수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쇼의 웃음소리를 이렇게나 가까이서 듣는 것에 대해, 쥰은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여기는 마츠모토 쥰이네.” 히가시야마가 말했고, 쥰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기술부 부장이지.”

쥰이 몸을 바로 세우자, 쇼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 전에 보았던 것처럼 밝고 쾌활한 웃음이 아니었고, 눈이 가늘어졌다. 쇼가 손을 내밀자 쥰은 조심스럽게 맞잡았고, 쇼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들은 너무 가까웠다. 씨발, 진짜 씨발. 쇼에게서는 너무나도 좋은 냄새가 나서, 쥰은 조금이라도 덜 기억하기 위해서 숨을 멈추고 싶을 정도였다.

쥰은 자신의 넥타이를 매만졌고, 쇼의 시선이 그의 손목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수트 재킷 소매 아래로 커프 브레이슬릿의 끝자락이 보이는 손목으로. 

이제 쇼는 미소를 잃었고, 쥰과 한 번 더 시선이 맞자 그의 눈은 커다래졌다.

그가 알아챘을까? 쥰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사쿠라이상?” 히가시야마가 입을 떼자, 쥰은 쇼가 한 번 더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뭔가 억지로 짓는 미소 같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히가시야마상.” 쇼가 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부장이 있다니 놀랐습니다.”

이 거리에서 쇼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되니, 전화 통화는 실제와 비교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그렇지. 마츠모토군은 최근에 승진했네. 부장들 중에서도 가장 젊지만, 그들이랑 비교해서도 전혀 뒤처지지 않지.” 히가시야마의 칭찬에 당혹스러워진 쥰은 얼굴이 붉어졌다.

“과장이십니다, 히가시야마상.” 쥰이 말했다. 그리고 쇼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쿠라이상.”

쥰이 고개를 들자 쇼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히가시야마가 쥰의 동료에게 손짓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쇼가 다음 사람을 향해 가기 전에, 쥰은 그가 “미안합니다” 하고 입모양을 지어 보이는 것을 보았다.

쥰도 말하고 싶었다. 네, 저도 유감이에요.




쥰은 그 날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의 메시지도 받지 못했는데, 쇼가 사건에 대해 인식한 것보다는 이 편이 더 낫다고 여겼다. 폰으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척 할 수 있으니까. 쇼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이 ‘사쿠라이 쇼’는 가끔씩 자신에게 선물을 사주는 쇼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그는 놀라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정말이지 쥰은 컨벤션을 빼먹고 토마와 마찬가지로, 하코네 관광을 나가 워터파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히가시야마가 행사장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볼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그럴 수 없었다.

한편, 니노는 자신의 방을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선 형편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침대가 자신을 놓아주고 싶지 않아서 포로로 사로잡았다고. 그딴 게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그래서 둘째날은 쥰 홀로 참석했다. 쇼가 자신을 잘 볼 수 없도록 가장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쇼의 강연은 그 전날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쥰은 쇼가 자신의 자리가 있는 방향으로 더 자주 시선을 돌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쥰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어떻게 쇼가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쥰을 찾아낸 것인지, 쥰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기뻐하는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다.

쥰은 저녁 식사를 위해 행사장에 남을 생각도 않은 채, 짐을 싸기 위해서 택시를 잡아 호텔로 향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하코네를 떠나야 했다. 출근할 필요는 없었지만, 일이 쌓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호텔로 가는 도중에 쥰은 메시지를 받았고, 보낸 사람을 확인하고도 놀라지 않았다. 조금 늦긴 했지만, 어쩌면 쇼가 신중하게, 그 전날에 있었던 일을 받아들이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을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만남에 영향을 받은 것은 쥰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저녁 먹으러 오지 않으셨네요, 가 쇼의 문자였다.

네, 짐을 싸야 해서요. 쥰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미안해요. 제가 알았더라면, 강연 초청을 거절했을 겁니다. 당신 호텔을 예약해 줄 때, 제가 하코네에 머무는 날짜와 겹치긴 했지만,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나 때문에 강연을 거절하겠어요? 존댓말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쥰이 물었다.

당신이 불편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셨잖아요. 정말로 마지막까지 그걸 지킬 생각이었습니다. 미안해요. 

쥰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쇼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죠. 우리 둘 다 몰랐잖아요.

그럼에도, 이걸로 위안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해요.

답장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쥰은 호텔 방에 도착했다. 내가 어디에 묵는지 아시죠.

답장이 오기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다. 뭘 요청하시는 거죠?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순 없어요. 여기에서부터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내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겠죠. 우리가 우연하게 만나버린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그걸 최대한 잘 활용해 보죠.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가 쇼의 다음 메시지였다. 뭘 요청하시는 거죠?

쥰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장점과 단점을 재어 보았다. 더 잃을 게 뭐가 있지? 여기로 와서 나랑 이야기 좀 해요.

확신하세요? 좋은 생각 같지 않아요. 

쇼는 이미 쥰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 선물들 덕분에 그의 메일 주소까지 알고 있었다. 쥰이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도, 가장 최근에 위시리스트에 추가한 것이 전자 마사지기라는 것도. 쥰의 생각에, 더 이상 숨길 가치가 있는 것이 없었다. 

확신해요. 여기로 와줘요.

메시지가 도착해 폰이 울리기까지 거의 꼬박 5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최대 한 시간만 기다려주세요.

쥰은 그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고서 짐을 싸는 것에 집중했다. 체크아웃은 내일 정오였지만, 그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호텔에 뭔가를 놓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물건들을 챙기는 것을 미룰 수 없었다. 


객실 벨이 울릴 때까지 쥰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는 여전히 수트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드레스 셔츠의 팔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렸다. 넥타이는 풀어내서 별도의 가방에 담은 세탁물 사이에 넣어두었다. 문으로 향하며 쥰은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문을 열자, 여전히 그 정말 딱 맞는 수트를 입은 쇼가 보였다. 쥰은 맞춤 수트일 거라고 생각했다.

쇼가 단지 그를 바라만 보고 있자, 쥰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쇼가 조용하게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당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네요. 이해해 주세요.” 쇼가 말했다.

쥰은 그를 방 안으로 들이기 위해, 말없이 옆으로 물러섰다.

“정말 좋은 방이군요.” 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베란다에서의 전망도 정말 좋은가요?”

“봐줄만 해요.” 쥰이 말하자, 쇼가 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앉아도 될까요?” 쇼가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쥰이 고개를 끄덕였다. 쥰은 카운터에 기대어 섰고, 잠시 동안 둘 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쇼가 그를 바라보며 쥰의 외모를 충분히 감상했고, 쥰 역시도 똑같이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하기로 했죠.” 쇼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상기시켜 주었다. 쥰은 쇼가 그렇게 바라보는 것을 멈추기를 바랐다.

어쩌면 정말로 그의 방에 쇼를 들인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그랬죠.” 쥰은 카운터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그의 손목 위 팔찌에 머무르는 쇼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쥰은 쇼가 다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렸다. “마음에 든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그걸 문자로 읽는 것과 제가 직접 보는 것은, 당신이 이야기해주는 것을 직접 듣는 것은 다르니까요.” 쇼가 말했다. 그는 다리를 꼬고, 양손을 소파 팔걸이에 올려놓았다. 모든 조명을 켜둔 것은 아니어서, 그림자에 반쯤 잠긴 쇼를 보자 쥰은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려워졌다.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생각해 봤어요.” 쥰이 자신의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그 다음 말을 꺼낼 때에는 시선을 돌렸다. “만나지 말자고 했었지만, 우리 둘 다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인해 이렇게 됐네요.”

“취소하고 싶으신 거라면,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쇼가 제안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협의한 것들을 깨뜨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라요. 유감이라는 것도요.”

“알고 있어요.” 쥰이 말했다. 그들 사이에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의 표정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당신이 사과할 필요 없어요. 당신 잘못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악수할 때, 절 바라보는 표정을 봤는걸요.” 쇼는 쥰을 바라보며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라는 걸 어떻게 아셨죠?”

그 말에 쥰은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목소리 때문에 알았어요.”

쇼가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면, 그 전날 밤에 전화도 했었죠. 이 방이 어떤지, 당신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면서요. 제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저라는 걸 바로 알았나요?”

“사실, 아저씨 개그를 했을 때 당신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쇼는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까다로우신 분이군요. 위시리스트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을 겁니다.”

쇼는 쥰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취소하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됩니다. 제가 드렸던 것들은 가지셔도 돼요.”

“왜 내가 취소하려고 당신을 여기에 불렀다고 생각하는 거죠?” 쥰이 물었다.

“우리 만났잖아요.” 쇼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그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래요. 그건 좀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걸 여기서 끝내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럼 이제 뭘 원하시죠, 쥰상?” 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쇼의 전화가 올 때마다 쥰이 기대하고는 했던 그 바리톤의 목소리에 가까워졌다. 소리를 왜곡하는 마이크 없이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쥰은 쇼가 집중해서 듣는다는 확신이 들자 말을 이었다. “아이바상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했었나요?”

“제가 관심을 가질만한 친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바쨩이 저에 대해서 뭐라고 했었는지 알려주시겠어요?”

그 호칭은 쇼와 아이바의 오랜 관계를 확인해주기에 충분했고, 쥰이 궁금해하는 것들의 리스트 중에서 또 한 가지 항목을 제외해주었다. “기분 내키면 문자해 보라고요.” 쥰이 회상했다. “다음 질문.”

“이렇게 체계적으로 진행하시는 건가요?”

“당신이야말로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것에 대해 이틀 동안 강연을 했잖아요. 한 두 가지는 배웠나 보죠.” 쥰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는 쇼의 강연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쇼가 그렇게나 설득력 있는 태도로 이야기하니까. 

“어떻게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을 수가 있죠?”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제 당신이 하코네에서 머문 동안의 사진을 저에게 보내주실 거란 기대는 할 수 없겠지만, 만약 보내주시기로 한다면 전 매우 감사할 겁니다.”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쥰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나요? 존댓말로요?”

“예의를 갖추려고 할 뿐이에요.” 쇼가 주장했다.

쥰은 그 부분은 넘기기로 했다. “다시 제일 중요한 문제로 돌아와서. 당신도 요청할 수 있어요, 아시죠?”

“그런가요?” 생각에 잠기는 동안 쇼의 아랫입술은 튀어나와 있었고, 쥰은 그 입술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난 모르겠어요, 쥰상. 내가 무엇을 요청하든 당신이 고려할 의지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는 걸요. 당신은 매우 고집이 세고 완고한 사람이죠.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어제 절 알아본 이후에 당신의 행동을 보고 그 인상은 더욱 확고해졌고요.”

“당신도 요청할 수 있어요.” 쥰이 말했다. “사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게 전부였죠. 난 당신 선물을 받았다는 걸 확인해주기 위해서 사진들을 보냈고, 그 다음에 당신이 한 건 알려줘서 고맙다고 한 것뿐이에요. 내가 받았다는 걸 보여줘서 고맙다고요.”

“그게 당신을 행복하게 해줬나요?” 쇼가 쥰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요?”

“내 선물들이요. 당신을 행복하게 했나요?”

“네.” 쥰이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정말 많이요.”

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헬리콥터도요?”

“특히 헬리콥더도요. 나 이제 잘 조종하게 됐어요.”

쇼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그럼 난 그걸로 충분해요.”

“내가 방금 취소할 생각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신은 그저 지금 우리가 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건가요?” 쥰이 물었다.

쇼가 끄덕였다. “이미 말했다시피, 난 당신이 불편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천천히 진행할 거라고 약속했었고, 그렇게 하면 돼요. 오늘은 별개의 사건으로, 우리 둘 다 책임을 질 수 없을 정도로 속도를 빠르게 감아버린 것이 되었지만요. 아무튼 당신이 즐겁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요.”

“음,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당신이 요청을 하는 것이라면요? 당신이 내킨다면요.”

쥰은 쇼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그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나 정말로 원해요.” 쇼의 고집에 쥰은 자신의 고집으로 맞섰다. “우리 만났어요. 이미 끝난 일이에요. 이제부터 당신이 그 전에 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그 전의 관계들이 끝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쥰이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쇼는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정말로 뭘 요청하는 건가요? 어제는 별개로 치고, 당신을 만나지 않는다는 걸 계속 지키기를 바라는 건가요?”

“상황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만나지 말자던 것은 관두자는 이야기예요.” 쥰이 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쇼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은 쇼의 아랫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러지 말아요.”

그 말은 쥰을 놀라게 했다. “뭘요?”

“이거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요청하고 있잖아요.”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요.” 이제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쥰이 말했다. “그리고 방금 당신에게 말했고요.” 언제나 요구하는 것은,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은 쥰이었다. 쥰은 쇼가 똑같이 하기를 원했다. 쇼가 그에게 해주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쇼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표정과 쥰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부드러움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솔직히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

그 말에 쥰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요?”

쇼는 쥰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고, 쥰의 소매를 걷어올린 팔뚝 살에 잠시 머무른 후에야 다시 쥰과 시선을 맞추었다. “당신 모습 본 적 있어요? 나 정말 참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당신에게 요청하는 건 날 그만 괴롭히라는 거예요.”

쇼의 고백에 쥰은 온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찌릿함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오늘 밤 뭘 원해요?” 쥰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쇼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 말아요.”

“오늘 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죠?” 쥰은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되물었다. 쇼가 요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쇼가 요청하기만 한다면 그는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었다. 쥰은 되돌려주고 싶었고, 그 욕망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 욕망을 맛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쇼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신도 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쥰상,” 쇼가 경고하자, 쥰은 그것을 신호로 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쥰은 쇼 바로 앞에 다가선 후에야 멈춰섰다. “원하는 것을 말해줘요.”

쇼는 괴로워했고,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에 도움이라도 된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전에 거부했었잖아요.”

“당신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자위하지는 않겠다고 한 것은 기억해요.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없잖아요.”

쇼는 쥰을 바라보지 않았다. “섹스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아뇨, 그런 적 없어요. 스카이프 켜고 자위하지 않겠다고 한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쥰이 상기시켰다. “다시 떠올려봐요.”

쇼는 잠시간 조용히 있었다. “당신 스카이프는 언급한 적 없어요.”

“마찬가지죠. 카메라 없잖아요, 안 그래요?”

쇼는 쥰을 올려다보았고, 쥰은 손을 뻗어 쇼를 만지게 될까봐 팔짱낀 자세를 유지했다. 먼저 굴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뭘 원해요?”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쥰이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줘요.”

쥰은 쇼가 깊게 숨을 들이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빠르게 숨을 내뱉는 것과 함께 쥰이 듣고 싶어 하던 대답이 들렸다. “샤워하고 와요.”

쥰은 입꼬리를 올려 작게 미소지었다. 쇼를 조금 더 놀리기 위해 물었다. “같이 하지 않을 건가요?”

“아뇨.” 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샤워해요. 하지만 너무 오래 하진 말아요.”

“알았어요.” 쥰은 쇼 앞에서 서서 안경을 벗었다.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싶어서. 

그는 쇼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핥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쥰은 제 몸에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뒤돌아보지 않고 샤워실로 향했다.



아라시 / 사쿠라이 쇼 / 마츠모토 쥰 / 쇼쥰 / 쇼준 / 사쿠쥰 / 사쿠준

5화부터는 포스타입에서 성인물 등급으로 공개됩니다.

  1. COO : 최고업무집행책임자로, CEO 사장 아래 수석 부사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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