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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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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팬픽/쇼쥰/번역] Silvered Gold of Dying Days - 3

SPICA*쥰 2018. 7. 2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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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 답장을 받고서야 쥰은 자신이 보냈던 문자를 기억해냈다.

왜 비가 오기를 바라시나요?

비가 오면 일이 더 잘 되더라구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전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게 성가시더라구요.

어쩐지 쥰은 30대의 남자가 우산을 펼쳐야 하는 것에 짜증이 난 모습을 상상하고서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맑은 날을 더 좋아해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계획이 방해받지 않는 것이 좋아요. 

쥰이 파악한 이 ‘쇼’라는 남자는 지켜야 할 스케쥴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계획 이야기를 하니 말인데요, 아이바상에게서 당신 번호를 받은지 한 달이 됐네요.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대화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나요? 

여기서부터 어떻게 진행하고 싶은지 계획이 있나요? 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문자만 하기를 원하시는 줄 알았어요. 새롭게 협의하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쥰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손목에 찬 팔찌를 바라보며, 호기심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쇼가 진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스크램블 에그의 아침 식사 사진과 그들이 매일 주고 받는 문자를 제외한다면 다른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이 팔찌는 로저 페더러라고 서명을 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네, 있어요. 쥰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입력했다.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답장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뭐가요?

정말이신가요? 

쥰이 셀카에 대해 내보였던 거부감과 전화 통화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본다면, 쇼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 알아요. 그래서 다시 협의하자고 하는 거죠.

왜 이거죠? 왜 지금인가요? 정말 완전하게 확신하는 게 맞으신가요, 쥰상?

궁금해서요. 당신이 진짜 사람인지 모르니까. 그리고 맞아요, 확신해요. 

5분 정도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쇼가 여전히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표시해주는 입력중 신호도 뜨지 않았다. 쥰은 조급하고 불안해졌고, 지하철 역을 떠나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내내 손에 폰을 쥐고 있었다. 

우편함을 확인하는 동안 폰이 진동했고, 쇼가 전화를 건 것을 보고 쥰은 멈춰섰다. 

주위를 둘러보자 바깥에 있는 경비 직원을 제외하고 건물 로비에는 혼자뿐이었다. 아무도 그를 엿듣지 않을 것이다.

쥰은 겁먹고 도망치기 전에 손가락으로 밀어 전화를 받았고, 폰을 귀에 갖다댄 채 숨을 멈췄다.

전화 반대편에서는, 누군가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선 요란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통은,” 깊은 바리톤의 목소리가 쥰을 놀라게 했다. “이쯤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이름을 말할 텐데요. 우리 상황을 고려하면 그냥 ‘안녕하세요’ 만으로도 좋습니다.”

쥰은 한 번 더 어깨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폰에 반쯤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드럽게 말하는 타입이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요, 쥰상.”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쇼의 목소리가 쥰의 기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쇼는 전혀 나이 많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쥰의 나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의 음역의 깊이는 목소리를 매우 남성스럽게 들리게 했지만, 그렇다고 쥰이 종종 프로레슬러나 보디빌더를 떠올리고는 하는 그런 무뚝뚝한 톤은 아니었다. 

“그런 타입 아니니까요.” 쥰은 자신의 목소리가 쉰 것처럼 들리는 것이 싫었다. 목을 가다듬고선 귀와 어깨 사이에 폰을 끼워 넣고, 우편함에서 신문과 신용 카드 청구서를 꺼냈다. “그냥 피곤한 것뿐이에요.”

“전화하지 않는 게 좋았을까요?” 쇼가 물었다.

“아뇨.” 쥰이 재빨리 대답했다. “당신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내가 요청했잖아요.”

전화 반대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쥰은 그 웃음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랬죠. 이제 충분히 진짜 사람처럼 들리나요?” 

그 말에 쥰은 웃음 섞인 콧방귀를 꼈다. “네, 충분히 진짜처럼 들려요. 난 그저…” 쥰은 우편함에 또 다른 상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멈췄다. 이전 상자보다도 더 크고 더 긴 것이었다. 급하게 상자를 꺼내자 보낸 사람에 로저 페더러라고 적혀 있었다. 

쇼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에 드세요?”

“난…” 쥰이 입을 뗐다가, 우편함 문을 닫고 엘레베이터를 향했다. 다리는 저절로 움직일 뿐이었다. “아직 안 열어봤어요.” 상자를 들고 가며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병이었고, 쥰은 와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 벌써 보신 줄 알았어요.”

“상자만 봤어요.” 어쩐지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파트 문을 열며 쥰이 말했다. 마침내 쇼의 목소리를 듣게 된 흥분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통화하고 있는 남자로부터 또 다른 선물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현관에서 구두를 벗어야 한다는 것도 겨우 기억해냈고,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가 주방 카운터에 기대 서서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다.

“최근에 아마존에서 구매한 것들 덕분에 포인트를 조금 쌓았더라구요. 포인트가 소멸되기 전에 당신에게 뭔가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쇼가 설명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하는 것에, 그동안 쥰에게 답장을 할 때마다 이런 목소리였을지가 궁금해졌다.

쥰은 겨우 상자를 열어냈고 아까의 추측이 맞았다. 레드 와인이었다. 연도를 확인하자, 쥰은 34년 된 와인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나한테 1983년도 레드 와인을 보냈네요.” 쥰이 폰을 귓가에 다시 한번 갖다대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쇼가 생각에 잠겨 콧소리를 냈다. “당신이 곧 34살이 된다고 언급하셨던 것 같아요. 잘못 기억했을까요?”

“아뇨,” 마치 쇼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쥰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위시리스트에 없었는데요.” 쥰은 이렇게 비싼 와인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커프 브레이슬릿은 처음이라서 그랬다고 변명하기도 쉬웠지만, 가장 최근 쇼에게서 받은 이 선물은…

“한 달이니까요.” 현재 쥰이 갖고 있는 걱정은 눈치채지 못한 쇼가 말했다. “당신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밤에 당신이 전화하자고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어쨌든 전에 와인 좋아한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났어요. 제가 마셔보지는 못한 거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밤에 마셔볼게요.” 와인 병의 라벨 및 밀봉을 확인하며 쥰이 약속했다. 수입산이었는데 아마도 스페인산인 것 같았다.

“그럼 감사하죠.” 쇼의 대답에서 쥰은 그의 미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별로라면 편하게 말해줘요. 전 와인 전문가는 아니어서요.”

쥰은 몇 초간의 침묵 끝에 말했다. “고마워요. 진심으로요.” 이런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의 와인 거치대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지만, 그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이라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천만에요. 놀라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다음에는 리스트에 있는 것을 보낼 수 있게 할게요.” 쇼가 말했다. 

“서프라이즈에는 익숙하지 않을 뿐이에요.” 쥰이 인정했다. 아마도 쇼는 아까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들었을 테다. “위시리스트가 있으니, 최소한 내가 뭘 받게 될지 대충은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걸 우편함에서 발견한 게 싫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싫지 않았어요.”

전화 반대편에서 쇼가 즐거워하며 낄낄 웃었다. “맛이 괜찮은지 아닌지 알려줘요.”

“그럴게요.”

“그럼, 쥰상. 오늘 저녁은 더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럼.” 쥰은 쇼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통화를 종료하고 한동안은 폰을 만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스스로에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길어진 목욕이 끝난 후, 쥰은 저녁 식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겨뒀던 파스타를 데우고 와인을 얼음통에 담았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늦은 저녁을 즐기는 동안 한 잔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와인잔을 들어 그의 입술에 갖다대기 전에 조심스럽게 향을 음미했다. 와인의 풍부한 향에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쇼는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쥰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쥰은 폰을 집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커프 브레이슬릿을 한 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있는 사진. 쇼의 번호로 사진을 보내자, 기다린 지 몇 초 되지 않아 답장을 받았다.

괜찮나요? 아님 별로인가요?

미친듯이 좋아요. 이걸 아마존에서 샀다고요?

오, 다행입니다. 스페인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어서 그냥 직관으로 골랐어요. 아마존에서 사진 않았어요. 온라인 와인 샵에서 찾았습니다.

아마존 포인트를 사용했다고 했잖아요. 

혹시라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 그 와인 샵의 명성을 지켜줄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전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답니다. 용서 바라요. 

이거 비싼 맛인데요.

그러길 바랐습니다. 제가 사기 당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네요. 

쥰은 감동 받았다. 쇼가 그렇게까지나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문자 친구일 뿐인데. 전화 한 통으로는 그들의 관계를 변경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왜죠? 쥰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라니 뭐가요?

왜 이걸 보낸 건가요? 당신은 날 알지도 못하잖아요.

전 당신이 로저 페더러를 좋아하는 것은 압니다. 그리고 아마존 위시리스트 중 4분의 3은 전부 책과 만화책이라는 것도요. 당신이 능률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을 선호하는 것도 알죠. 그리고 와인으로 당신이 행복해진 덕분에, 그 팔찌를 차고 있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는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쥰은 기다렸다.

몇 가지는 알고 있어요, 가 이어진 쇼의 메시지였다. 완전히 낯선 사람에게는 그런 선물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쥰이 보냈다.

마음에 드셨나요, 쥰상? 네, 또는 아니오로요. 

쥰은 어떤 것도 꾸며낼 필요가 없었다. 그 와인은 저녁 식사를 완성해주었고, 쥰은 이미 직접 더 구매하기 위해 브랜드를 찾아볼 생각까지 했다. 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었나요?

네, 상당히요. 

기쁘네요. 그럼 남은 저녁 식사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 문자는 쥰을 웃게 만들었다. 레스토랑 매니저처럼 말하네요.

정말요?

쥰은 그 문자를 한두 번 다시 읽으며 잠시 멈췄다. 아까의 전화 통화로 쥰이 그의 목소리를 판단한 것처럼, 쇼가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뇨. 당신 목소리는 뉴스에서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쥰이 타자를 쳤다. 아니면 보험 광고에서요. 

웃는 이모티콘이 연속으로 왔다. 안타깝지만 저는 뉴스는 차치하고, 그 어떤 형태의 미디어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 대답 진심이신 거죠?

그럼요. 정말로 차분한 목소리네요. 쥰으로 하여금 집중해서 듣게 하는 목소리지만, 당연하게도 쥰은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쇼에게만큼은.

그 이야기는 앞으로 당신이 통화하는 것에 더 긍정적이라는 뜻일까요?

쥰은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당신은요?

전 여전히 긴급 상황에서만 서로에게 전화하는 것을 원합니다. 아니면 당신에게 뭔가 협의하고 싶은 것이 있고, 문자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같다면, 전화하거나 음성메모를 남기시는 것은 환영입니다. 

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쇼는 절대 만나자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어서, 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도쿄에는 거의 1천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누구든 쥰이 알고 있는 그 쇼일 수 있었다. 심지어 쇼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닐 수도 있었다.(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지만.)

그들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와 마주칠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쥰에게는 유지해야하는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그럼 오늘 밤은 긴급 상황으로 간주되는 건가요?

당신이 정말로, 확실하게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었으니까요.

그게 당신에게는 긴급 상황이라는 거예요? 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시겠지만, 쥰상. 당신이 제게 무언가를 요청하면, 저는 제 능력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매우 진지하게 고려한 다음 당신에게 제 결정에 대해 문자할 거고요. 오늘 밤은 당신이 제 목소리를 듣고 싶어해서 전화했어요. 간단하죠. 

정말로 간단해? 쥰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싶었다. 쇼가 그렇게나 너그러운 것인가? 사람을 잘 믿는 것인가? 쥰은 한 달간의 끊임 없는 소통을 통해, 이 남자의 신용을 얻었다는 것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쥰은 타자를 쳤다. 그럼 내가 또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면, 당신은요? 마지막 부분을 조금 확실하지 않게 쓴 채 전송 버튼을 눌렀다. 

가능하다면 전화할게요.

왜요?

당신이 요청하는 거니까요. 

젠장. 쥰은 잠시 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 이렇게 반응하고 마는 자기 자신이 싫었다. 그는 십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쥰은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빠져 있었고, 스스로가 깨닫기도 전에 니노와 아이바가 먼저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당황스러웠다.

일전에 쇼는 의지가 되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쥰은 딱히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훨씬 더 잘 지냈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덜 불안해했다. 능력 평가에서나 직원 회의에서 더 자신감이 있었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요구 사항을 말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

이것은… 쇼와 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쥰에게 유익한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쥰이 요청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하겠다는 쇼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이것은 너무 과했다. 쥰은 그를 알지 못했다. 쇼는 쥰을 몰랐다. 

내가 요청한다고 해서 당신이 해야할 필요는 없어요. 쥰이 짧은 시간의 침묵 끝에 보냈다. 

난 당신에게 그냥 뭔가를 주는 게 아닙니다, 쥰상. 당신이 날 행복하게 해줬을 때, 당신도 행복해지기를 바라서 주는 거예요. 그렇게 진행되는 거죠. 혹시 다르게 이해하신 건가요?

쥰은 첫번째 날부터 그 질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뇨, 그 부분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당신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건가요?

그래요, 그게 정확하네요. 쥰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안정성과 인내심을 지닌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에 익숙했다. 승진하기 전부터도, 그는 효율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네, 그런 사람은 없었거든요. 쥰이 수긍했다.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천천히 하면 됩니다. 만약 더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은 거라면 말해주세요. 마음을 바꾸시더라도 선물은 그대로 가지셔도 됩니다. 선물이니까 돌려 받고 싶지는 않아요. 

나 취소하는 거 아니에요. 쥰이 분명히 말했다. 그저 너무 벅찰 뿐이에요. 

이해합니다. 오늘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았을까요?

서둘렀다고? 그 말에 쥰이 인상을 찌푸렸다. 쥰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쇼에게서 또 다른 문자가 왔다. 당신에게 전화하려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요청했지요.

내가 했던 말을 주어담는 것은 아니에요. 정말로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요? 오늘밤 ‘어떤 것이든’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쥰은 이 메시지에 있는 ‘어떤 것이든’이라는 말이 정말로 어떤 것이든 다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이해했다. 쇼는 쥰을 가지고 놀기 위해 이걸 하는 것이 아니었다. 쇼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쥰은 아직 파악할 수 없었지만. 

쥰은 왼쪽에 놓인 와인 잔을 보고 모든 조심성을 떨쳐버렸다. 당신에게 한 잔 따라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진심이었다. 좋은 와인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그럼 한잔 따라주세요. 문장 끝에 와인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쥰은 장단에 맞춰주기로 하며, 선반에서 와인잔 하나를 꺼내와 와인을 따랐다. 식탁에 놓인 두 잔의 와인잔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은 후 쇼에게 보냈다.

제가 거기 있는 것처럼 하세요, 가 쇼의 다음 메시지였다.

쥰은 웃었다.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걸요. 난 사람을 상상하는 것에 서툴러요. 

하지만 제 목소리는 아시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여기 있다면 뭘 할건지 말해줘요. 다시 생각해보고 취소하기 전에, 쥰이 보냈다. 

그동안 당신이 괜찮은 요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당신이 어떤 요리를 하든지 전 아마 좋아할 겁니다. 당신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볼 거고요. 당신이 계속 이야기했던, 짜증을 내면서도 속으로는 귀여워하는 그 인턴이 새로운 성대모사를 개발했는지도 물어보겠죠. 그리고 당신이 제게 따라준 와인잔을 들고 외칠 거예요, “르네상스!”

쥰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완전 옛날 개그잖아요. 역시 노친네군요, 쇼상. 옛날 개그를 하는 노친네. 

답장은 와인 이모티콘과 함께 ? 뿐이었다. 

쥰은 고개를 저으면서 항복했다. 노친네든 아니든, 정말 오랜만에 가장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혼자서 폰만 들고 있을 뿐인데.

르네상스, 쥰은 와인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그들은 기존에 협의한 방식에서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석 달째에 돌입했다. 쥰은 사진을 보내는 것에 더 개방적으로 되었지만, 그 어떤 사진에도 자신의 얼굴이나 그의 정체를 드러낼 만한 것은 보내지 않았다. 그는 쇼에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뭘 먹는지를 보여주고, 직장 이야기나 매일 겪게 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서 사람들 중 그의 변화에 대해 눈치챈 사람이 있더라도, 니노 외에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토마는 최근에 쥰이 덜 긴장하고 더 너그러워 보인다는 점에서 훨씬 좋아보인다고 암시하긴 했는데, 쥰은 토마의 피드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니노는 쥰에게 의미심장한 표정만 지어 보일 뿐이었고, 최근 아이바의 바에 찾아갔을 때는 아이바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많은 것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질문하면 쥰은 그저 바뀌지 않는 사실만 대답할 뿐이었다. 아직 쇼를 만난 적 없고, 아니, 앞으로도 만날 생각 없어.

그러면 니노와 아이바 둘 다 빠르게 물러서곤 했다. 대신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다음 경기라든지 연예인의 이혼 루머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며. 

쥰은 자신에게 기대되는 업무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의 부서가 기준에 맞춰 업무를 잘 수행한다면, 향후 재편성이 있더라도 인사과가 그의 부서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가능한 그의 전체 팀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이 시간에 맞춰 업무를 끝마칠 수 있도록 체크하는 것에 스스로를 옭아매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그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하지만 아무도─아이바와 니노를 제외하면─ 쥰에게 개인 스트레스 해소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문자로만, 가끔 전화로 연락하는 사람이지만. 석달 동안 쇼는 쥰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것 중 10개가 넘는 선물을 주었고, 가장 최근에는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헬리콥터를 주었다. 

헬리콥터 상자의 포장을 풀었을 때, 쥰은 쇼의 문자를 기다리지도 않고, 브이 모양을 만든 손과 함께 상자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가 사진과 함께 보낸 메시지였다. 

천만에요. 즐거운 시간 보내요, 가 그가 받은 답장이었다. 


승진 후 새 포지션에서 요구되는 사항에 적응하는 것도 더 쉬워졌고, 필요하다면 쇼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 역시도 더 쉬워졌다.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추가하는 것이 점점 더 편해졌고, 여전히 우편함으로 상자들을 받는 것은 그를 놀라게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쇼에게 의심이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쇼에게 선물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직장에서나 쇼에게나, 쥰은 요구를 하는 것에도 더 적극적으로 되었다. 부서에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할 때에는 쥰은 언제나 정확하고 꼼꼼했으나, 쇼에게 요구를 할 때에 그와 같은 결심을 내보이는 것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 원하는 게 있어요. 봄이 거의 끝나 나무들이 색을 바꾸기 시작한 어느 밤이었다.

쇼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어떤 것이든지요.

하코네에 아는 사람이 있으세요?

하코네요? 네, 몇몇 연줄이 있을 겁니다. 왜요?

쥰은 다음 문자가 그에 대한 것을 더 밝히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코네는 도쿄가 아니기도 하고, 그냥 물어보기만 한다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많이 드러내진 않을 것이었다. 거기서 열리는 업무 관련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데요. 온라인 예약 사이트를 다 찾아봐도 근처 호텔 방을 찾을 수가 없어서 꽤 곤란하네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이 왔다. 호텔 방을 예약해주길 원하시는 거라면,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해도 돼요.

그냥 호텔 방이 아니에요. 일 때문이라고요. 쥰이 되풀이했다. 회사 인사과를 통해서 알아봤지만 실패했고, 당신이 제 마지막 기회예요. 참가를 취소하거나, 여기서 왔다 갔다 해야겠죠. 

언제 필요하세요?

다음주 토요일이에요. 가능할까요? 아니면 벌써 늦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쥰은 답장을 하지 않고, 리모콘을 집어 들어 쇼가 사준 헬리콥터를 가지고 놀았다. 어쩌다 예상보다 빠르게 일을 끝내게 된 평일 밤이었으니, 남은 시간을 긴장을 푸는 데 쓰기로 했다. 

폰의 진동이 울리자, 쥰은 헬리콥터를 거실 바닥에 조심스럽게 착륙시킨 후 폰을 확인했다. 

하코네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세요?

쥰은 컨벤션이 열리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쩌면 택시 한 번 타고 갈 정도의 지역을 골랐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읽어보고 보냈다.

쇼는 답장하지 않았고, 쥰은 다시 혼자 놀기 시작했다. 아직 그 장난감을 적절하게 조종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의 정확한 무게를 계산하지 못해 헬리콥터는 약간 흔들리며 날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것에 익숙해지려는 무렵에 그의 폰이 한 번 더 울렸다. 쥰은 천장 팬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며 조심스럽게 장난감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하나 구했습니다. 불만족스러우시다면 말해주세요. 다른 곳을 예약해볼게요. 그의 메시지에 첨부된 링크를 누르자, 쥰은 멈춰서 눈만 깜박거리며 예약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쇼는 쥰에게 킨노타케의 방을 하나 예약해줬다. 그냥 방이 아니라 노천 베란다에 킹사이즈 침대를 갖춘 디럭스 객실이었다. 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링크를 통해 시설의 전체 개요를 확인하자, 쥰이 판단하건대 이 컨벤션에 초대된 그의 상사들 중 반 이상보다도 더 좋은 숙소에 머물게 되는 것이었다.

이거 너무 과해요, 쥰이 보냈다. 

불만족스러우세요?

아뇨, 쥰이 재빠르게 답장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호화로운 것을 찾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2박만 머물 건데요. 

10점 만점에 9.2점을 받은 곳에서 2박 머무시는 겁니다. 당신이 도쿄에서 멀리 떠나 있는 동안 불편하시지 않길 바라니까요. 본인 침대가 아닌 침대에서는 잘 못 잔다고 하셨잖아요. 

쥰은 쇼가 그걸 기억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장소를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예약한 거죠.

쇼에게서 윙크 이모티콘이 왔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저 대신에 제 친구가 머물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쥰은 예약 내용을 검토하고 자신이 필요한 정보들을 확인했다. 호텔 주소, 방 번호, 원한다면 조식 포함. 모든 것은 로저 페더러의 이름 아래에 예약되어 있었고, 쥰은 코웃음을 쳤다.

이 사람이랑 정말 친한 친구인가 봐요, 이런 방을 로저 페더러의 이름으로 예약을 해줄 정도면?

당신도 아시겠지만, 쥰상, 전 페더러일 수도 있어요. 윔블던을 정복하는 게 저의 다음 목표일 수 있죠. 일련의 테니스 이모티콘이 따라 왔다. 

아무튼 진짜로, 저기에 머물 순 없어요. 

왜 안됩니까?

당신에게 돈을 내려고 했단 말이에요. 난 이런 고급 호텔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건 선물이에요. 원하는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쥰은 스크롤을 올려 자신의 첫 메시지를 다시 읽고서는 자신의 부주의함을 저주했다. 당신 진심 아니죠. 

진심이에요. 하코네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쇼가 돈을 받기로 한다면 그에게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확인하자, 쥰은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이 상황을 이용한 것 같았다. 

당신 목소리 듣고 싶어요, 가 쥰이 다음에 보낸 내용이었다. 

오늘 요구 사항이 많으시네요?

쇼가 들을 리가 없음에도 쥰은 혀를 찼다. 당신이 정말 진지한지 알고 싶어요. 

그냥 호텔 방일 뿐에요. 진정해요.

쥰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직접 말해줘요. 

1~2분 정도 기다리자 폰이 울리고 발신인 정보에 쇼의 이름이 떴다. 쥰은 전화를 받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냥 호텔 방일 뿐입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쇼의 목소리는 깊고, 끈기 있는 톤이었다.

“제가 돈을 낼게요.” 쥰이 주장했다.

“선물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

쥰은 잠깐 기다렸다. “지금 화났어요?”

쇼가 코웃음을 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말도 안 됩니다. 당신이 요청한 대로, 직접 말씀드리는 것뿐이에요.”

“기념품으로 받고 싶은 것 있어요?” 쥰은 더 생각해보기 전에,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쇼의 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말해버리고 말았다.

“사진이요.” 쇼가 말했고, 쥰은 그가 미소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공유해주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요.”

“당신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쥰은 자신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싫었다.

“‘고맙다’고 말하시면 돼요. 간단하죠.”

쥰은 지금 당장 쇼를 노려보고 싶었다. “고급 호텔이라고요.”

쇼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도 제가 뭘 예약했는지는 알고 있어요.”

“내가 돈을 낼 수도 없다고 했죠.”

“선물이니까요. 전 선물에 대한 돈을 받지 않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이렇게 제안을 하죠.”

전화 반대편에서, 잠시간 쇼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협의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내 말을 들어요. 내가 돈을 낼 수 없다고 했으니, 잠시 동안은 당신이 나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 걸로 요청할게요.”

쇼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쥰은 어쩐지 이 남자가 미간을 찡그리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죠?”

“최소한 당신이 오늘 사용한 돈을 다시 벌 때까지만이라도요.” 쥰이 설명했다. “그거 아니면 호텔 숙박비를 내게 해줘요.”

쇼가 작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아시나요,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당신이 가장 어려운 분이에요.”

“뭐, 저 전의 다른 사람들은 당신 선물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였나 보죠?” 쥰이 명확하게 말했다.

“정확합니다.” 쇼가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 전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끝나게 됐는지도 모르죠.” 잠시간의 침묵, 쥰은 그저 기다렸다. “좋아요. 제가 그 돈을 벌 때까지, 선물을 보내지 않을게요. 이제 만족하시나요?”

“네.” 쥰이 중얼거렸다. 쇼를 그렇게나 빨리 설득할 수 있었던 것에 놀랐다. “고마워요.”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쇼가 미소지었다. 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천만에요. 다음 주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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