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아라시 전력 (4)
the deep end
“더-워-.”굳이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지 않더라도 머리카락이 흠뻑 다 젖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체온으로 달구어지지 않은 침대 시트 위 공간을 찾아 몸을 뒤척여보려다, 제 몸 위에 잔뜩 널부러진 팔다리의 존재감을 의식하게 된 마츠모토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너무 덥잖아. 제 아무리 서로 ‘아직도’ 좋아 죽는 사이인들, 이런 무더위에 타인의 체온까지 덧대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사양이었다.옆으로 돌아누운 제 허리를 감싸고 배꼽 앞으로 둘러져 있는 팔 하나, 두 다리 사이에 기어코 발목을 끼워넣은 다리 하나, 그리고 종아리 위에 턱 하고 올라와 있는 다리 또 하나.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열기를 건강하게 뿜어내는 신체였지만, 그렇다고 곤히 자고 있는 상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친구, 마츠모토 쥰은 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느 꿈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밤이 되면 혹은 일정 시간의 생활을 한 후에 인간은 생체 리듬적으로 꼭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이 시간 동안에 뇌가 계속 활동을 하면서 남긴 잔상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미래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라든가 자신에게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따라서 문맥 상에서 흐름을 보고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었는지를 파악해야함이 맞겠다. 다른 언어에서도 ‘꿈’이라는 단어에 이 두 가지의 의미가 같이 존재하는 것인가 궁금해진 적이 있었지만은, 그에 대해서 굳이 조사해보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이렇게 되지도 않는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유독 자신에게만은 오냐오냐 해준다는 것은 마츠모토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사쿠라이가 제게 해준 일은 친누나도 해주지 않을 일이라는 것도. 오히려 메구미는 딱히 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을 거였으면서 “너희 사귀니?” 하고는 굳이 소리내어 물어보고 저들을 앞질러 가는 바람에, 쥰이 메구미의 뒤에다 대고 “시끄러워!” 외치는 동안 사쿠라이가 멋쩍은 웃음을 짓게 만들었었다. 어쨌든 오늘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백팩을 둘러멘 마츠모토는 대문을 나와 담장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이내 몸 앞으로 크로스백을 멘 채 자전거를 탄 사쿠라이가 골목을 돌아 나타났다. 사쿠라이네가 옆 골목에 이사온 후로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수 십명의 남자 아이들이 한 공간에 들어차 춤추고 웃고 구르며 시끄러웠던 공간. ‘백턴을 할 수 없는 주니어’로 분류되어 연습실 한 쪽에 나란히 앉아서도 그 당시의 녀석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실실거리던 웃음 소리. “이렇게 된 거, 다른 애들은 백턴하는 동안 나는 쇼군이랑 같이 춤추면 되겠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 등 뒤에 딱 붙어 서서 내 어깨를 넘어다 보던 얼굴의 가까움. 장난치는 게 분명한 숨결. 마치 이제는 자기가 더 크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종종 그랬었다. 어느 여름 이후 키만 훌쩍 자라버렸던 녀석은. 고작 2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학창 시절의 2년 차는 꽤 큰 것이어서, 큰 형인마냥 행동했던 내가 있었다. 수많은 동생들 중에서도 유독 작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