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팬픽 (20)
the deep end
번역 관련 공지 확인하기 / 1편부터 읽기 그 다음 날 아침은 주말이었다. 쥰은 쉬는 날이라는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살짝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아침 제일 먼저 겪고 싶지는 않았다.아스피린을 입에 털어 넣고 약효가 들기를 기다리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머리통을 감싸 쥔 쥰은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살펴 보았다.폰을 켜자 니노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보였다. 나 집에 왔어, 고마워 라는 간단한 문자에 졸린 표정의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니노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엄지 손가락 이모티콘이었다.니노와의 대화창에서 빠져나온 후, 쥰은 메시지들 중 상단에 있는 ‘쇼’라는 알 수 없는 이름에 미간을 찡그렸다. 메시지 미리보기로는 전혀 알 수 없어서 전체 대화를 읽기 위해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답장이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
Silvered Gold of Dying Days 쇼쥰(사쿠라이 쇼X마츠모토 쥰) / AU / 19금(Explicit) / (64907님의 원문 링크) “쥰에게 그가 추천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바가 그에게도 쥰을 추천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니까.”* 원문 태그 : 슈가 대디, 대디 킹크, 적나라한 성적 묘사(자위, 세미퍼블릭 섹스, 가슴근육 섹스 등)*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경우 1, 2와 같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 외 번역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공지 포스트로 확인해주세요.*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과 일체의 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사무실로 호출된 것에서부터 눈치챘어야 했겠지만, 지난 주의 업무는 쥰의 혼을 빼놓을 작정인 듯 ..
“전 남친일까나아….” 문장의 마지막 단어 끝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말투는 너무나도 익숙한 애인의 것임이 분명했는데, 어째 평소의 목소리보다 한 옥타브 정도는 높지 않냐는 부차적인 감상을 가지며 나루미는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즉각적인 반박과 함께. “전 남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 히로토?” 미야마 히로토는 나루미 료스케의 올해로 3년차 남자친구로, 이유는 후에 설명할 예정이지만 ‘남자친구’ 앞에는 ‘전’이 붙지 않는다. 절대로! 물론 나루미가 도쿄를 잠시간 떠나 있는 동안, 만 2년 5개월의 연애 기간 중 대부분을 장거리 연애를 해야 했던 것은 온전히 나루미의 탓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았다. 첫째로 어차피 둘 다 함께 도쿄에 있을 때도 사건의 숨겨진..
어디 온천 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맞지? 라는 이야기에 대답하려던 찰나, 테이블 하나 건너편에서 여러 무리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가던 사쿠라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설마 아까 들은 건 아니겠지? 이야기가 들릴 거리는 아니었겠지만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제 발 저릴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비끼며 걸어가던 사쿠라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츠모토를 바라보고선, 마츠모토를 향해 눈을 찡그리고는 제 동료들을 쫓아나갔다. 왜 저래? 싫어, 진짜 싫다고. 싫은 걸 어쩌란 말야.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자극만으로도 이미 너무나도 벅찬 머릿속에 자꾸만 기어들어 오는 잡념들을 밀어내고 본능에 집중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상황 판단 잘 하라는 제 마지막 이성의 신호에 따라 ..
─ 집이야? 조금 전 출발, 1시간 내에 도착 예정. 필요한 거 있어?아침의 메일 이후 따로 공연을 보러 간다거나 어디 마시러 간다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잠시 창밖 가로등들의 움직임을 좇으며 대본과 스케쥴과 기삿거리,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양손에 쥐고 있던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 괜찮아. 쇼군,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을게. 조심히 와♥♥평소보다도 솔직한 고백에 하트 뒤에 붙은, 그동안 본 적 없던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에 바로 가서 쓰러지듯 자버릴까 했었던 계획을 바꾼 것은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다. 작게 미소를 띄우고서는 폰 화면을 끄고 잠시나마 눈을 감았다. 최근 사쿠라이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떠나지..
금요일 아침, 마츠모토는 지하철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서는 성큼 걸어가 냉큼 앉았다. 늦은 밤부터 쏟아부었던 장대비는 아침 해가 뜨는 것과 함께 잠깐 그쳤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한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발자국들로 질척질척한 열차 바닥 위로 사람들 손에 들린 우산들. 떨어지고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들. 마츠모토는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툭 떨어진 시선 그대로 여름의 요소들을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그나마 평소보다는 더 강하게 냉방이 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한 더위에 셔츠 아래쪽을 잡고서 몇 번 펄럭거리던 마츠모토의 시야에 그때 그 남자가 들어왔다. 마츠모토가 앉은 자리에서 두세 자리 왼쪽 자리 앞에 멈춰 선 남자는 오늘도 더위에..
“더-워-.”굳이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지 않더라도 머리카락이 흠뻑 다 젖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체온으로 달구어지지 않은 침대 시트 위 공간을 찾아 몸을 뒤척여보려다, 제 몸 위에 잔뜩 널부러진 팔다리의 존재감을 의식하게 된 마츠모토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너무 덥잖아. 제 아무리 서로 ‘아직도’ 좋아 죽는 사이인들, 이런 무더위에 타인의 체온까지 덧대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사양이었다.옆으로 돌아누운 제 허리를 감싸고 배꼽 앞으로 둘러져 있는 팔 하나, 두 다리 사이에 기어코 발목을 끼워넣은 다리 하나, 그리고 종아리 위에 턱 하고 올라와 있는 다리 또 하나.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열기를 건강하게 뿜어내는 신체였지만, 그렇다고 곤히 자고 있는 상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친구, 마츠모토 쥰은 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느 꿈을 가리키는 것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밤이 되면 혹은 일정 시간의 생활을 한 후에 인간은 생체 리듬적으로 꼭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이 시간 동안에 뇌가 계속 활동을 하면서 남긴 잔상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미래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라든가 자신에게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리키는 ‘꿈’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따라서 문맥 상에서 흐름을 보고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었는지를 파악해야함이 맞겠다. 다른 언어에서도 ‘꿈’이라는 단어에 이 두 가지의 의미가 같이 존재하는 것인가 궁금해진 적이 있었지만은, 그에 대해서 굳이 조사해보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이렇게 되지도 않는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유독 자신에게만은 오냐오냐 해준다는 것은 마츠모토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사쿠라이가 제게 해준 일은 친누나도 해주지 않을 일이라는 것도. 오히려 메구미는 딱히 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을 거였으면서 “너희 사귀니?” 하고는 굳이 소리내어 물어보고 저들을 앞질러 가는 바람에, 쥰이 메구미의 뒤에다 대고 “시끄러워!” 외치는 동안 사쿠라이가 멋쩍은 웃음을 짓게 만들었었다. 어쨌든 오늘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백팩을 둘러멘 마츠모토는 대문을 나와 담장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이내 몸 앞으로 크로스백을 멘 채 자전거를 탄 사쿠라이가 골목을 돌아 나타났다. 사쿠라이네가 옆 골목에 이사온 후로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수 십명의 남자 아이들이 한 공간에 들어차 춤추고 웃고 구르며 시끄러웠던 공간. ‘백턴을 할 수 없는 주니어’로 분류되어 연습실 한 쪽에 나란히 앉아서도 그 당시의 녀석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실실거리던 웃음 소리. “이렇게 된 거, 다른 애들은 백턴하는 동안 나는 쇼군이랑 같이 춤추면 되겠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 등 뒤에 딱 붙어 서서 내 어깨를 넘어다 보던 얼굴의 가까움. 장난치는 게 분명한 숨결. 마치 이제는 자기가 더 크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종종 그랬었다. 어느 여름 이후 키만 훌쩍 자라버렸던 녀석은. 고작 2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학창 시절의 2년 차는 꽤 큰 것이어서, 큰 형인마냥 행동했던 내가 있었다. 수많은 동생들 중에서도 유독 작기도 ..